[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사회를 바꾸고 싶으면 공간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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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고립된 주거 환경 공동체 파괴 초래
공간 구성 각종 사회 문제에 큰 영향
도시건축 ‘인간성 회복’ 가치 품어야

지난달 경기도 수원시의 한 연립주택에서 60대 여성과 4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원인은 생활고였다. 세 모녀는 2020년 초부터 해당 주택에 거주했으나 인근 주민들은 이들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생활고로 인한 죽음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복지 사각의 틈은 여전히 메워지지 않고 비극은 아직도 반복된다. 사회복지공무원들조차도 그들이 스스로 힘들다고 연락하지 않는 이상 숨어 있는 위기 가구를 찾아내기는 힘들다고 한다. 위기 가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는 이웃인데, 이마저도 이웃과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 모두 집중되는 곳인 집은 누구에게는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세계를 차단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집은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가장 날것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다.

2020년 발표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는 한국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2001년에서 2002년을 기점으로 자살률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1998년 주택 200만 호 건설 완료로 아파트 거주가 급속히 증가하면서부터다.

건축학계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가 파괴되는 주 요인은 아파트가 보편화되고 동네의 길이 사라져 고립된 생활공간이 많아지는 것이라 지적한다. 고층 거주의 사회적 해악은 이미 해외에서 1970년대부터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소외감, 신경증, 우울증, 범죄에 대한 공포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지 및 참여도는 층수가 높을수록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영국의 도시학자인 빌 힐리어는 도시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커뮤니티가 살아날 수도 있고 사회가 분열될 수도 있다고 했다.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거나 상권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그는 높은 실업률은 범죄를 양산하지만 훌륭한 공간과 건축적 유산은 이를 억제한다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간을 연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16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도시를 누가 어떻게 만드나’ 주제의 제45차 열린부산·도시건축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는 “자살률을 비롯한 사회적 병리현상의 대부분은 공간에서 비롯된다”며 사회를 바꾸고 싶으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으로 ‘도시건축통합계획’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프랑스 철학자 르페브르의 ‘공간적 실천’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 새로운 공간의 생산, 나아가 도시를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공간적 실천’은 인간의 일상 활동을 통해 만들고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하기 위해, 공부하기 위해, 산책하기 위해 등등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공간을 만들고, 만들어진 공간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동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개인의 일상 활동과 사회적인 관계는 공간의 활용을 통해 사회적인 삶으로 구조화된다.

도시공간을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계획해서 만들었다기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혹은 개개인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게 된다. 특정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담기기도 하고 자본의 집약체로 발현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계급을 나누고 사회적 불평등을 양산하는 도시공간에서 자유와 평등을, 민주주의적 참여를 몇 개의 커뮤니티센터를 만든다고 해결할 수 있을까.

어디서든지 일할 수 있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구분이 없고, 일하면서 쉬고 쉬면서 일하는 시대가, 그리고 나눠서 연결되고 떨어져서 모이는 새로운 리얼리티의 세계가 진행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1인 가구 증가, 초고령 사회 진입, 인구소멸, 기후위기 등 인간과 자연의 여러 문제들이 공존한다. 어떻게 하면 현실적인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 집을 매개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우리의 도시공간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개발시대에 양적 공급 위주의 도시 만들기가 아니라 자원의 윤리적 소비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 욕망을 윤리적 실천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우리’라는 개념을 성숙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건축은 변화하는 미래에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답은 ‘인간성 회복’과 ‘공동체 확산’에 있다. 조망권을 독점하고 개인의 거주 공간을 키워 가는 게 아니라 공유 공간을 늘려 가야 한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새로운 공간의 생산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래를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에 담긴 삶의 지혜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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