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과 함께하는 산복도로 여행 [산복빨래방] EP18.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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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복빨래방입니다. 빨래방은 매일 오후 6시 30분 문을 닫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이 마을을 찾습니다. 마을 입구 호천마을 문화플랫폼에는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야경을 보거나 드라마 촬영지를 보러 온 관광객들입니다. 어느덧 5개월 차 마을 주민이 된 우리는 '오늘은 몇 명이 왔나?' 하며 마을을 둘러보고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마을을 카메라에 담는 관광객들을 보고 있으면 ‘이 동네로 우리는 매일 출근한다’라는 뿌듯함마저 들기도 합니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보는 마을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의 카메라에 담기는 ‘우리 마을’의 모습도 궁금했습니다. 주민들을 배려하며 마을의 ‘진짜 모습’을 보는 방법도 조금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와 4명의 관광객이 필름 카메라를 들고 함께했습니다.


해가 지면 마을은 운치있는 야경 마을로 변신합니다. 마을 어디에서나 산복도로 야경을 볼 수 있습니다. 해가 지면 마을은 운치있는 야경 마을로 변신합니다. 마을 어디에서나 산복도로 야경을 볼 수 있습니다.

■감탄에서 걱정으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관광객의 시선을 담겠다는 저희의 계획이 마을 주민들에게 피해가 되면 안 됐기 때문입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마을 관람 시간은 30분으로 제한하고 마을 투어 인원을 5일에 걸쳐 나눠 받았습니다. 마을 투어를 위해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준비했습니다. 야경으로 알려진 마을인 만큼 많은 분이 저녁 시간에 마을 투어를 신청했습니다.

투어는 산복빨래방에서 시작해 180계단을 지나 호천마을 플랫폼, 호천마을 끄티 카페를 둘러보는 코스였습니다. 오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마을 주민들이 아직은 잠에 들지 않은 이른 저녁 마을을 둘러봤습니다. 주민들의 집과 가까운 좁은 골목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카메라 사용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사진 대신 눈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습니다.


야경과 함께 선 커플. 야경과 함께라면 어디든 '인생샷'입니다. 야경과 함께 선 커플. 야경과 함께라면 어디든 '인생샷'입니다.

4일간 진행된 투어 첫날 마을을 찾은 송주영(21) 씨는 시내버스에 보인 산복도로 야경의 매력에 투어를 찾았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86번 시내버스를 타고 본 산복도로 야경은 버스에서 내려 제대로 마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고 합니다. 송 씨는 유튜브 <산복빨래방> 구독자이기도 합니다. “차창 밖 풍경과 실제 눈에 담은 산복도로 풍경이 다르다”며 “산복도로는 한번 와 볼 만한 곳이다”며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마을 곳곳에 있는 높은 경사의 계단 탓에 연신 거친 숨을 내쉬기도 했습니다.


주영 씨는 산복빨래방을 통해 본 마을 사람, 마을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주영 씨는 산복빨래방을 통해 본 마을 사람, 마을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부산 사상구 주례에서 온 박예원(26) 씨는 대학생 때 마을에서 봉사활동 하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치위생학과 봉사활동으로 칫솔질 교육, 치약 만들기를 하며 호천마을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때의 좋았던 기억이 예원 씨를 다시 호천마을로 불렀습니다. 박 씨는 "부산 야경 하면 황령산을 많이 떠올리는데 호천마을 야경은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며 산복빨래방 3층 야경에 큰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외할머니와 함께 포즈를 취한 손녀. 꼭 껴안은 손에서 사랑이 느껴집니다. 외할머니와 함께 포즈를 취한 손녀. 꼭 껴안은 손에서 사랑이 느껴집니다.

산복빨래방을 찾는 단골 어머님의 손녀도 마을을 찾았습니다. 산복빨래방 단골인 정국남 어머님은 손녀 유나연(23) 씨에게 어느날 문득 “산복빨래방 가봤냐?”며 빨래방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산복빨래방을 보던 손녀는 할머니 집을 사진에 담고 싶었습니다. 유 씨는 “옛날에 할머니 집에서 본 야경은 주황색 야경이었는데 등이 바뀌고 하얀 야경이 돼 조금 아쉽다”며 “할머니와 함께 남긴 사진 한 장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집을 찾는 나연 씨에게 특별한 마을 안내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구석구석 옛 모습까지 기억하고 있는 모습에서 할머니를 사랑하는 손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관광객들은 마을을 둘러본 뒤 모두 카메라가 담은 마을보다는 눈으로 담은 마을의 '진짜 아름다움'을 이야기했습니다. 관광객들은 마을을 둘러본 뒤 모두 카메라가 담은 마을보다는 눈으로 담은 마을의 '진짜 아름다움'을 이야기했습니다.

빨래방 직원들은 산복도로의 역사, 마을의 역사, 빨래방에서 만나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관광객에게 최대한 전달하려 노력했습니다. 저희의 노력이 통했을까요. 관광객들은 어느덧 마을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듯 보였습니다. 마을 구석구석을 산복빨래방 직원들과 둘러 본 4명의 관광객은 입을 모아 높은 계단을 걱정했습니다. 최희원(28) 씨는 “계단 경사가 심해 젊은이들도 힘든데 어르신들이 다니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투어 소감을 밝혔습니다.


■주민들이 사는 곳

빨래방을 찾는 마을 주민들은 종종 관광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180계단에 쓰레기가 한 가득이라” “밤에 윽수로 시끄러워” 같은 대부분 아쉬움의 목소리입니다. 관광객들은 조금 더 고즈넉하고 다양한 구도로 사진을 찍기 위해 마을 구석 구석을 누빕니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 모습입니다. 일부 관광객들은 마시던 커피를 마을 구석에 버려두고 가기도 합니다. 조용한 마을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은 듯한 행동입니다.


마을 변화의 시작이었던 '쌈 마이웨이'. 마을 변화의 시작이었던 '쌈 마이웨이'.

2016년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가 마을에서 촬영한 뒤 마을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마을 큰 도로에 마을 플랫폼이라는 시설이 생겼습니다. 관광객들이 드라마를 추억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마을 곳곳에는 호랑이 벽화가 그려졌습니다. 삶의 공간에서 시나브로 사람들이 찾는 공간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급격한 변화 속에 마을에서는 주민 피해를 막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드라마 핵심 공간이었던 ‘남일바’를 마을 중심부에서 마을 한 쪽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사유지인 남일바의 특성상 주민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플랫폼에서는 카페도 운영하며 마을에 도움이 될 수익 사업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관광객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주민들은 관광객이 오면 따뜻하게 맞아주고 길도 잘 알려줍니다. 하지만 주민과 관광객의 공존을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한 어머님의 말에 관광객과 주민 공존의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을에 오는 건 좋아. 젊은 사람 보기 힘든 마을이잖아. 근데 여기에도 사람이 산다는 걸 좀 한번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마을이 알려지고 마을 좋아해주면 좋지만 우리도 살아야지"


산복도로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 주세요. 산복도로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 주세요.

얼마 전 마을 입구에는 주황색 배경의 안내판이 붙었습니다. ‘쉿! 주민들이 살고 있어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빨래방이 있는 호천마을을 포함해 산복도로를 여행할 때는 한 가지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민들이 살고 있어요'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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