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마약 청정국서 오염국으로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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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사범 증가… 단속과 함께 치료·예방 교육도 절실하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SNS와 가상자산을 활용한 비대면 마약 거래와 투약이 확산되자 부산경찰청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수리남을 무대로 한 한국 출신 마약 범죄자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의 주요 배우들. 부산경찰청·넷플릭스 제공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SNS와 가상자산을 활용한 비대면 마약 거래와 투약이 확산되자 부산경찰청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수리남을 무대로 한 한국 출신 마약 범죄자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의 주요 배우들. 부산경찰청·넷플릭스 제공

8월 21일 오후 울산 도심의 한 캠핑장에서 30대 남성이 웃통을 벗고 반바지 차림으로 캠핑장을 활보하며 화단에 들어가 소리를 지르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다. 놀란 캠핑장 이용객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시간 함께 마약을 한 남성 2명은 차량 문을 연 채 질주하다 차량이 도랑에 빠지는 사고를 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평범한 일반인 친구 사이로 태국 여행 중 마약을 경험한 후 인터넷을 통해 마약류 LSD를 구입해 함께 흡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영상은 경찰청 페이스북에 ‘캠핑장 떨게 만든 마약 좀비 3인방’이라는 제목으로 올랐다.


마약이 우리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마약 사범이 크게 늘었다. 이제 더 이상 마약은 폭력 조직이나 연예인, 부유층 자녀 등 일부 계층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을 타고 1020세대 청소년들의 마약 범죄가 크게 늘어 심각한 문제다. 이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 더 이상 마약 청정국 아니다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 지위를 벗어난 지는 꽤 오래됐다. 유엔은 마약류 사범이 인구 10만 명당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지정한다. 우리나라는 2016년 기준 25.2명으로 그 지위를 잃었다. 대검찰청이 발행하는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1만 명 미만이던 국내 마약 사범은 2016년 1만 4214, 2017년 1만 4123, 2018년 1만 2613, 2019년 1만 6044, 2020년 1만 8050, 2021년 1만 6153명으로 증가 추세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8575명으로 전년에 비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경우 올 8월 말 현재 628명의 마약 사범이 단속돼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8% 상승하며 전국적 증가 추세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검거율 기준의 이 같은 수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마약 범죄는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건이 훨씬 많은 대표적 암수범죄다. 학계는 우리나라 마약 범죄의 암수율을 28.57배로 상정하기도 한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국내 마약 인구를 100만 명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하수역학 기반 신종 불법 마약류 사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전국 57개 하수처리장 모든 곳에서 히로뽕, 펜디메트라진 등 불법 마약류가 나왔다. 검출량으로 역산하니 인구 1300명 중 1명꼴로 매일 히로뽕을 1회씩 투약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 마약의 늪에 빠져드는 청소년들

문제는 청소년 마약 사범 증가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범률이 높은 범죄 특성상 1020세대의 범죄 증가는 향후 사회적 확산세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10대 마약 사범은 2017년 119명으로 전체의 0.8%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450명으로 2.8%를 차지하며 급속한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20대 마약 사범도 2112명(15.0%)에서 5077명(31.4%)으로 크게 늘었다. 30대(25.4%)를 합하면 지난해 전체 마약류 사범 중 10~30대 비율은 59.6%에 달한다. 경남경찰청은 지난해 5월부터 부산·경남에서 합성 마약의 하나인 펜타닐을 불법 처방받은 뒤 투약·소지하거나 되판 10대 고교생 54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최근 경찰이 한 ‘텔레그램 마약방’을 수사하던 중 총책이 고등학교 3학년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 SNS·가상화폐 이용 비대면 거래 확산

최근 마약이 일반인들과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배경에는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이뤄지는 유통 구조의 변화가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유통되는 대표적 마약류인 히로뽕은 과거 일본에서 제조되고 부산을 중심으로 반입돼 폭력 조직 등을 통해 유통됐다. 한때 부산이 마약 도시의 오명을 썼던 이유이기도 했다. 마약 거래 장소로 고속도로 갓길이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 마약은 인터넷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손쉽게 거래가 이뤄진다. 텔레그램에 ‘아이×’ ‘빙×’ ‘얼×’ 등 마약을 의미하는 은어 광고가 등장한 지 오래다. 전자지갑에 가상화폐를 보내면 미리 약속된 곳에 마약을 두고 찾아가는 식의 일명 ‘던지기’ 수법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텔레그램의 보안 메신저는 물론이고 접속 정보를 암호화한 다크웹이나 딥웹 등을 이용한 마약 거래도 일반화되고 있다. 국제우편을 이용한 직구도 이뤄진다. 마약 전과가 없는 일반인이나 사이버 공간에 익숙한 10대들도 호기심에 범행을 저지르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 마약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 무너졌다

부산경찰청 ‘마약범죄 근절 합동 추진단’ 이기응 간사(폭력계장)는 “인터넷 등을 통해 손쉽게 정보를 얻고 유통도 이뤄져 마약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느슨해진 것이 마약 범죄 확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울산 캠핑장 마약 사건의 경우가 이 같은 사회 분위기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2020년 9월 부산 해운대에서 40대 운전자가 대마를 흡입하고 포르쉐 승용차를 운전하다 7중 추돌 사고를 낸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지난해 12월 아프리카TV에서 VJ가 독일 음악 ‘코카인 2021’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영상을 올린 뒤 밈(인터넷 패러디물)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10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유명 영화배우와 걸그룹 멤버까지 가세하며 화제가 됐는데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는 지적이다.

■ 마약과의 전쟁…종합적 대책 필요하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8월 취임 일성으로 “SNS나 가상자산을 통해 마약이 쉽게 유통돼 청소년까지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며 “집중 단속을 통해 국민들을 안심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춰 부산경찰청이 합동 추진단을 설치하고 연말까지 집중 단속을 벌이기로 하는 등 전국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마약 범죄의 특성상 강력한 단속과 함께 치료와 재활 등 종합적 대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청소년 마약 범죄가 늘고 마약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느슨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약의 심각성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 재범률이 높은 범죄의 특성상 치료와 재활에 대한 사회적 투자도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마약 치료재활병원은 21곳이 지정돼 있는데 실질적으로 치료와 재활이 이뤄지는 곳은 경남 창녕시 국립부곡병원과 인천 참사랑병원 등 2곳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마약류 관리와 단속, 교육, 치료를 통괄적으로 수행할 마약청 신설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드라마 ‘수리남’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우리 국정원과 공조수사를 벌이는 미국의 DEA가 바로 재범자 관리와 마약 유통, 관리 감독, 국제 공조까지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컨트롤타워다. 우리 사회가 마약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기 전에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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