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밤과 유령, 그리고 눈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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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오민욱 감독 다큐 ‘유령의 해’
조갑상 소설 ‘밤의 눈’ 영상화
영화 이미지로 부유하는 문장
실험적 시도 낯설지만 매력적

다큐 ‘유령의 해’ 스틸 컷. BIFF 제공 다큐 ‘유령의 해’ 스틸 컷. BIFF 제공

1960년 4월, 시민들은 거리를 점령했으나 이듬해 5월 거리는 다시 군인들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짧은 승리 이후 오랜 암흑기를 거쳐 1979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철폐를 외치며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바로 소설 ‘밤의 눈’의 ‘옥구열’이 6·25와 4·19, 5·16 군사정변을 겪고 부마항쟁을 맞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폭력의 시대에서 살아남았지만 정치적 표적이 되어야 했으며 생존자 또는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잔인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이 아프고 무거운 이야기를 오민욱 감독이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습니다.


오민욱의 ‘유령의 해’는 조갑상의 장편소설 ‘밤의 눈’을 다시 쓰는 다큐입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걸었던 거리를 다큐 속 인물 ‘승미’가 걷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걷는 수정동과 남포동, 부산역과 부산진역 일대는 무척 낯설고 모호해 보입니다. 그곳이 어디였는지 깨닫기도 전에 공간의 풍경들이 흐릿하게 뭉개집니다.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승미의 위치를 짐작케 하는 건 부산타워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부산타워의 불빛만이 승미의 존재를 확인시킵니다. 소설 속 하늘의 ‘달’이 처참한 역사의 유일한 목격자였다면, 부산타워는 지금 이 시대의 불투명해지는 모든 것들을 지켜보는 증인 같습니다.

낮과 밤의 거리를 유령처럼 배회하던 승미는 어느 날 불현듯 사라집니다. 옥구열이 사라지지 않고 끝내 보고만 자유의 거리를, 승미는 버텨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승미의 사라짐의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사라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니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누군가 사라져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바로 ‘유령들’의 도시니까요.

‘유령의 해’는 오민욱 감독이 조갑상 소설가에게 ‘편지’를 보내며 시작합니다. 소설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게 된 경위를 편지로 씁니다. 이 오프닝은 마치 그의 전작 ‘해협’을 연상케 하지만, “육신 같은 문장”들을 영화로 옮기는 행위는 편지를 쓰는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승미는 한 통의 편지를 읽는 것처럼 소설의 문장들을 낭송하지만 이는 서사를 재현하기 위한 방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승미가 읽어주는 문장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재현할 수 없는 문장들을 이미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가로등이 켜지고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와도 어둠이 주는 모호함과 익명성은 짙어져 가고 인파로 넘치는 거리는 언제 불씨로 떨어질지 모르는 휘발성으로 가득 차 있”는 소설의 문장을 오민욱은 어둠 속 작은 불빛들의 점멸을 통해 표현합니다. 소설 속 빛과 어둠, 침묵, 두려움, 슬픔, 공포의 감정을 이미지화합니다. 도무지 영상으로 옮길 수 없을 것 같은 문장들이 이미지로 부유합니다. 감독의 말대로 소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주 잠깐 왜 그가 조갑상의 소설에 매료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사적인 이야기와 소설이 혼재되던 승미의 내레이션은 어느새 거대한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승미가 반복해서 걸었던 그 거리에는 역사적 사건들이 빠르게 기록됩니다. 4.19와 5.16의 푸티지, 거리를 점령했던 시민과 군인들의 모습이 병치됩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과 성대한 국가장 그리고 2022년 승미가 머무는 작은 호텔로 걸려오는 집요한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전화벨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영화적 장치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서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실험적인 다큐 ‘유령의 해’는 조금은 낯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 속 의미를 모두 파악할 필요가 있을까요? 공간과 시간, 빛과 어둠, 감독이 표현하는 그 이미지들을 감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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