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흰여울마을에 가냐고요?” 산복도로의 재발견 [산복빨래방] EP20.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안녕하세요, 산복빨래방입니다. 부산에는 수많은 산복도로 마을이 있습니다. 빨래방이 있는 범천동 호천마을이 대표적이죠. 그동안 산복도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산복도로 마을을 소개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빨래방 직원들은 여러분께 다양한 산복도로를 소개하겠다는 핑계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바로 산복도로와 해안 절벽 사이에 있어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흰여울문화마을로요. ‘부산 버스 드리프트’ 사진으로 유명한 산복도로 핫플레이스, 산복도로에 전시한 현대 미술 작품까지 돌아봤습니다.



■ 바다 위 산복도로, 흰여울


부산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은 해안 절벽 위에 있어 이색적인 풍경으로 유명합니다.바다 위에 있어 '산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쉽지 않지만, 흰여울문화마을도 영도 섬 전체를 두르는 산복도로와 맞닿아있습니다. 부산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은 해안 절벽 위에 있어 이색적인 풍경으로 유명합니다.바다 위에 있어 '산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쉽지 않지만, 흰여울문화마을도 영도 섬 전체를 두르는 산복도로와 맞닿아있습니다.

흰여울문화마을을 아시나요? 부산 영도 해안가 절벽 끝에 올라선 작은 마을입니다. 원래는 송도해수욕장 건너다보이는 마을이라고 해서 ‘2 송도’라 불린 곳입니다. 하지만 2011년부터 낡은 집을 고치고 예술가의 손을 거쳐 오늘날 부산 대표 관광지로 거듭났습니다. 해안 절벽 위에 집이 다닥다닥 엉킨 탓에 위태롭기도 하지만, 영도 바다를 마주한 모습이 아름다워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기도 합니다.


빨래방 직원이 나들이 온 곳은 바로 이곳, 흰여울마을입니다. 산복도로를 찾아 나섰다며 왜 흰여울마을이냐고요? 바다와 가까이 있어 ‘산복’이라는 단어를 쉬 유추하기 어렵지만, 봉래산이 가운데 솟은 영도는 섬 전체가 경사져 산복도로가 섬을 두르고 있습니다. 흰여울마을도 앞에는 깎아질 듯 가파른 해안절벽이 있지만, 뒤로는 산복도로가 지나고 있는 겁니다. 흰여울마을도 산복도로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 모르셨죠?


그래서 역사도 다른 산복도로 마을과 비슷합니다. 흰여울마을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전국 피란민이 몰리며 형성된 판자촌에서 시작했습니다. 가파른 해안 절벽이 있는 탓에 원래는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발 붙일 곳 없는 피란민은 이곳에까지 밀려 들었던 것입니다. 공동묘지 위에 세워진 아미동 비석마을, 고무공장 인근 산동네인 호천마을과 배경이 닮았습니다.


흰여울문화마을 아래는 영도 바다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절영해안로'가 있습니다.대부분 산으로 둘러 쌓인 대부분 산복도로 마을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흰여울문화마을 아래는 영도 바다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절영해안로'가 있습니다.대부분 산으로 둘러 쌓인 대부분 산복도로 마을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설치된 계단을 타고 바다 가까이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흰여울마을 아래에 있는 절영해안로입니다. 멋대로 쌓인 테트라포드와 무지개 돌담 너머 영도 바다가 출렁입니다. 해안로 끝에 있는 해안동굴에 가서 멋지게 ‘동굴 샷’도 찍어봅니다. 즐겁게 산책한 것도 잠시, 다시 올라가기 위해 가파른 계단 앞에 서자 한숨이 푹 나왔습니다. 호천마을 ‘180계단’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산복도로’ 소리가 절로 나오는 아찔한 경사를 보여줬습니다.


절영해안로에서 흰여울문화마을로 올라가는 계단은 '역시 산복도로'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높았습니다. 절영해안로에서 흰여울문화마을로 올라가는 계단은 '역시 산복도로'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높았습니다.

흰여울마을에도 그늘은 있습니다. 바로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리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흰여울마을 골목골목에는 카페와 소품 가게 등이 있어 관광객 눈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실제 주민이 사는 주거지와 붙어있습니다. 실제 이날 골목을 다니던 빨래방 직원 눈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으니 쓰레기를 버리거나 시끄럽게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안내문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산복도로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건 좋은 일이지만 주민에게 피해가 가선 안 되겠죠. 관광객들의 성숙한 배려 의식은 물론, 과도한 관광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 산복도로 버스 드리프트


유튜브에 '산복도로'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부산 버스 드리프트'가 나옵니다.버스가 180도 가까이 꺾이는 이 모습은 신기한 장면이지만, 산복도로에서 안전 운전해야 할 이유를 보여줍니다. 유튜브에 '산복도로'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부산 버스 드리프트'가 나옵니다.버스가 180도 가까이 꺾이는 이 모습은 신기한 장면이지만, 산복도로에서 안전 운전해야 할 이유를 보여줍니다.

산복도로 하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진이 있습니다. ‘부산 버스의 위엄’ ‘부산 버스 드리프트’ 등 이름을 가진 이 사진은 산복도로를 달리는 부산 버스가 한 번에 180도 가까이 꺾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유튜브에도 ‘산복도로’를 검색하면 이런 버스 드리프트를 다룬 영상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조회 수도 180만 회에 달하죠. 산복빨래방이 이 ‘핫플레이스’를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장소는 산복도로 유명 카페인 ‘초량845’ 바로 아래쪽 도로입니다. 산복도로인 망양로와 초량로가 만나는 지점이죠. 각도가 워낙 꺾여있어, 버스가 오지 않았는데도 도로를 보는 것만으로 아찔했습니다. 도로 건너편에서 기다리길 잠시, 반여3동과 수정4동을 오가는 52번 버스가 서서히 초량로를 따라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부산 버스는 운전이 거칠다는 편견과 달리, 버스는 오르막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끝까지 올라온 버스는 곧장 우회전하기 위해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각도가 큰지 버스 옆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묘기에 가까운 코너링을 보여준 버스는 그렇게 직원들 눈에서 멀어져갔습니다.


'부산 버스 드리프트'로 유명한 이 도로에서 직접 차를 타보면 어떨까. 오르막이 끝난 직후 급격한 코너링을 할 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부산 버스 드리프트'로 유명한 이 도로에서 직접 차를 타보면 어떨까. 오르막이 끝난 직후 급격한 코너링을 할 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럼 승용차는 어떨까. 직접 해보기로 했습니다. 차를 타고 버스가 올라온 길을 그대로 따라 올라가 봅니다. 애초에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엑셀에서 잠시라도 발을 떼면 곧바로 뒤로 갈 것처럼 경사가 가팔랐습니다. 그리고 오르막길이 끝나는 직후, 우측으로 코너링할 때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몸이 울렁였습니다.


산복도로는 산허리를 둘러 가는 도로이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르막길 끝 180도 가까이 좌우로 꺾이는 이 장소는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부산에는 이런 산복도로를 오가는 버스나 차량이 무척 많습니다. 때로 묘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면 즐겁기도 하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산 시민은 물론 산복도로를 찾아온 다른 분들도 시내보다 더욱 안전히 운전해야겠습니다.



■ 산복도로의 재조명


부산에서는 2년에 한 번씩 현대 미술 전시회인 ‘부산비엔날레’가 개최됩니다.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국내 양대 비엔날레로 손꼽힙니다. 지난달 3일부터 진행 중인 부산비엔날레는 ‘물결 위 우리’라는 주제로 총 4곳의 장소에 전시회를 열었는데, 놀랍게도 그중 하나가 초량 산복도로에 있었습니다. 빨래방 직원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차가 오르기 힘들 정도로 구불구불한 산복도로를 오르자 좁은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옵니다. 전시회를 위해 산복도로 집 한 채를 통째로 꾸민 겁니다. 부산비엔날레는 가이드북에서 산복도로를 ‘도시이지만 친밀한 규모와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산복도로 마을의 풍경은 도시 부산의 오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산 초량동 산복도로에 주택을 개조해 만든 비엔날레 전시관. 집 내부 곳곳에 설치된 스마트폰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부산 초량동 산복도로에 주택을 개조해 만든 비엔날레 전시관. 집 내부 곳곳에 설치된 스마트폰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전시관으로 탈바꿈한 집안에 들어서자 곳곳에 설치된 스마트폰이 눈에 띄었습니다. 송민정 작가는 신발 기술자인 남편을 따라 부산에 정착한 하루코와 같은 날 부산에서 태어난 춘자라는 가상 인물의 이야기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작품을 보고 해석하는 즐거움은 온전히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산복도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동안 ‘인프라가 열악하다’ ‘계단이 많다’ ‘신기하다’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색다른 풍경을 무기로 삼아 전국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기도 하고, 예술인의 작품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산복도로가 재조명되는 시대가 온 것이겠죠.


빨래방에서 6개월 동안 일했지만 우리도 여전히 산복도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세기에 걸친 부산의 소중한 이야기가 잘 스며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랬듯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조명이 쏟아져야 할 이유입니다. 멋진 바다를 끼고 있는 광안리나 해운대도 좋지만, 부산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있는 산복도로를 찾는 발길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