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요산정신 부산정신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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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상 소설가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이사장

요산김정한문학상 시상식 등 제25회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이 오는 22일부터 29일까지 부산 곳곳에서 열린다. 김정한의 삶과 문학에 나타나는 요산정신은 개방성과 진취성, 공존성에 바탕을 둔 부산정신의 원형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산일보DB 요산김정한문학상 시상식 등 제25회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이 오는 22일부터 29일까지 부산 곳곳에서 열린다. 김정한의 삶과 문학에 나타나는 요산정신은 개방성과 진취성, 공존성에 바탕을 둔 부산정신의 원형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산일보DB

오는 10월 22일부터 일주일 동안 제25회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이 열린다. 사반세기 세월이 옷깃을 다시 여미게 한다.

요산 김정한(1908~1996)은 20세기 민족사의 질곡을 민중과 함께 견디어 내고 분단 극복이라는 민족의 숙원을 자신의 문학적 과제로 삼은 작가다. 한편으로는 평생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삶의 텃밭을 지켜 낸 파수꾼이기도 했다.

22일부터 제25회 요산문학축전

주제는 ‘차마 묵묵할 수 없는’

부산 사람들의 생활 정신 구현

개방성·진취성·공존성 바탕

부산정신의 원형은 요산정신

올해 문학 축전의 주제는 ‘차마 묵묵할 수 없는’으로 대표작 ‘모래톱 이야기’에서 빌려 왔다. 요산 소설은 낙동강 하류와 부산지역을 배경으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부산 사람들의 삶과 생활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다. 또한 그의 문학은 변방-지역의 문제를 보편적 담론으로 이끌었기에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기도 하다.

먼저 ‘사밧재’를 통해 부산 사람들의 현실주의와 연관된 적극성을 엿볼 수 있다. 때는 일제 말, 팔순이 다 된 송 노인이 양산에 사는 누나 병문안을 가려고 나서는데 하필 매섭게 추운 날이다. 손주며느리가 만류하지만 그는 겨울은 으레 추운 것이니 내일로 미룰 필요가 없다면서 기어이 나선다. 이웃에서는 고집쟁이라 하지만 그로선 그냥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힘껏 부닥쳐 보는 것일 뿐이다.

이런 기질은 일제 말 일간지 강제 폐간 직전의 신문 지국장 이야기인 ‘위치’에서도 확인된다. 배달 소년들이 해코지당하고 다치자 그는 사무실을 빌려준 친구와 같이 40대 배달원으로 나선다. 친구는 신문이 탄압받는 걸 보고 그저 불평만 하는 건 신문을 뺏기고 우는 아이들보다 더 못난 바보라고 말한다.

‘산거족’은 1960년대 부산의 고지대 주민들의 식수 문제를 다룬다. 상수도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동네라 그들의 수원은 국유지인 동네 뒷산인데 부정불하로 개인 땅이 되었다. 그들은 소송에 지고 산수도는 철거되지만 한 번 지면 계속 지고 살게 된다는 투지로 싸운다. 요산정신의 대명사이기도 한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발언도 이 작품에서 나오는데 주인공은 인간이 그리울 때나 어려운 고통을 당할 때 그 말을 새긴다.

요산 작품에는 권위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는 민초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산거족’에서 권력의 편에 붙어 허세를 부리는 사람에게 친구들이 “니가 뭔데 큰소리를 탕탕 치노?”라는 비난과, ‘모래톱 이야기’ 갈밭새영감의 “하기싸 시인들이니칸에 훌륭하겠지요. 머리도 좋고…. 선생도 시인 아입니꺼.”라는 발언이 그렇다. 이 말에는 글쟁이들에 대한 비판 이상의, 배운 사람들이 제 역할을 못 했을 때 받을 야유에 가까운 비판이 담겨 있다.

비판 정신은 무지렁이 순적백성에 그치지 않는다. ‘교수와 모래무지’는 해수오염에 관한 논문 내용이 신문에 소개되면서 교육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대학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시말서 제출을 거부하면서 “학문하는 사람이 학술논문을 발표하는데 무슨 놈의 허가가 필요합니까? 그런 나라가 이 지구상 어디에 또 있습니까? 신문이 학술 논문의 골자를 소개하는 건 신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일 테고.”라고 말한다. 학문의 자유를 지키려는 소신 있는 행동이다.

오늘 이 지점에서도 요산정신은 일정부분, 개방성과 진취성, 공존성에 바탕을 둔 부산정신의 원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는 변하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탄생시키지만 요산의 인간 존중 사상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차마 묵묵할 수 없을 때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정신도 유효하리라 싶다. 요산의 마지막 직책은 그가 오래 살았던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직이었다. 사회 저명인사 이전에 주민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맡았을 테니 그로선 별스러운 일도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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