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탕웨이가 탕웨이인 이유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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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문화부장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받은 탕웨이
정성스럽고 상세한 인터뷰 답변 눈길

빼곡하게 쓴 각종 에피소드 인상적
‘헤어질 결심’ 부산 촬영지 소개 꼼꼼
완벽 추구 성실함·깊고 따뜻한 시선
‘좋은 배우는 좋은 인간’ 공감 전해

‘영화도시’ 부산의 10월이 저물고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부산일보〉가 주최하는 부일영화상 시상식의 뜨거운 열기에 휩싸인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올해 제27회 BIFF와 2022 부일영화상 시상식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많은 영화팬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배우, 감독 등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부산의 10월은 그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용광로’였다.

10월의 끝자락에 선 요즘, 유독 생각나는 배우가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출연한 배우 탕웨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부일영화상 16개 부문 가운데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박해일), 여우주연상(탕웨이)을 휩쓴 데 이어 촬영상, 음악상까지 5관왕을 차지했다. 부일영화상 심사위원들도 ‘헤어질 결심’과 탕웨이 등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평론가인 정민아 성결대 교수는 “멜로와 미스터리를 오가는 이야기에서 신비로움과 열정을 존재 그 자체로 뽐낸 탕웨이, 투철함과 엉뚱함을 조화롭게 연기한 박해일,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로 인해 박찬욱의 작가성은 더욱 빛난다”고 평가했다.


중국에 머무르는 탕웨이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부일영화상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다. 탕웨이 취재를 담당한 〈부산일보〉 기자는 그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미리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배우 등 연예인들의 서면 인터뷰 답변은 의례적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본인이 아니라 소속사 홍보 전문가들이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에 쫒기는 유명 연예인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본인이 작성했더라도 답변이 너무 짧거나 알맹이가 없어 기자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탕웨이의 불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가장 걱정한 부분이 이런 점이었다.

하지만 탕웨이는 달랐다. 취재기자로부터 전해 받은 답변서는 무척 정성스럽고 상세했다. 기자의 짧은 몇가지 질문에 탕웨이는 이례적이라고 느낄만큼 장문의 답변을 전해온 것이다. 답변은 특히 딱딱한 문어체가 아니라 마치 상대방에게 조곤조곤 말하듯이 쓴 구어체 문구들로 가득했다. 직접 연기 방향을 구상하고, 연기에 몰입했던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심경 등을 자세하게 묘사한 부분이 많았다. 모호하거나 두루뭉수리한 표현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 되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쓰면서 직접 답변을 꼼꼼하게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기자가 자신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탕웨이는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동어를 반복 사용하는 등 시종일관 인터뷰어를 배려하면서도 위트를 잊지 않는 따뜻한 문체로 답변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他演的太太太太太好了(그의 연기가 너무 너무 너무~ 좋아서)’라고 의견을 밝히는 식이다. 탕웨이의 세심함, 확고한 프로의식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답변이었다.

‘헤어질 결심’의 많은 부분은 부산에서 촬영됐다. 탕웨이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부산의 포장마차도 기억에 남는다. 자주 가는 포장마차가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내가 오면 자리를 마련해두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시는데 그게 정말 감동적이다. 부산에서 촬영할 때 일부러 찾아갔었는데, 아쉽게도 그때는 안 계셨다…해운대 해안길도 좋아한다. 해일 씨가 소개해준 산책로인데, 오후부터 저녁까지 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기차를 놓쳤지만, 그래서 황혼과 밤의 절경을 만날 수 있었다. 아직도 그때 그네를 타고, 라면 한 그릇을 먹고, 바닷가 하이킹을 끝냈던 기억이 난다. 모두에게 강력 추천하는 코스다. 혼자도 좋고, 둘이나 가족도 좋고,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적당한 코스다. 그리고, 부산의 해산물도 좋아하는데, 생선훠궈 같은 매운탕도 기억에 남는다.”

탕웨이를 담당한 취재 기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살가움을 넘어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한편의 에세이 같은 답변이었다는 반응이다. 취재 기자는 또 “답변서를 읽으며 느낀 ‘완벽을 추구하는 연기 열정과 성실함, 인간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깊은 시선’은 탕웨이가 왜 탕웨이가 되었는지를 보여준 것 같다”는 후일담을 밝혔다. 또 다른 동료는 “탕웨이뿐만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부산에서 팬들과 소통한 이병헌과 량차오웨이(양조위) 등을 보면서 ‘좋은 배우는 결국 좋은 인간이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취재 후기를 전하기도 했다.

깊은 고민과 성찰, 따뜻한 연민으로 인간을 품는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내년 10월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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