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예측 불가능한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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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 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 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제공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파하고 고민하고 또 사랑에 빠지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주인공 ‘율리에’라는 여성을 통해 20·30대가 느낄 혼돈과 고민,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담백하게 그리고 있어 깊은 몰입을 유발한다.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도시, 오슬로를 배경으로 3인칭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12개의 장,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구성돼 마치 율리에라는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우리는 그녀의 인생 중 터닝 포인트가 되는 어떤 지점과 만나며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씩 알아나간다.

청춘 사랑·이별 그린 트리에 감독

누구나 공감할 인생의 불확실성

예상 비껴가는 주인공 선택 담아

그림 같은 오슬로 풍경도 ‘눈길’

29살의 율리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어느 날 의사란 직업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시각에 예민한 기질이 있다고 생각해 사진작가가 되겠다며 카메라와 장비까지 구매한다. 이 지점에서 율리에는 자신이 했던 선택을 후회하기 보다는, 더 좋은 선택을 위해 기존의 결정을 과감하게 폐기할 줄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 선택이 자신에게 ‘나쁜 선택’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는 걸 아직은 모른다.

율리에의 나쁜 선택 중 하나가 바로 ‘악셀’과의 연애다. 악셀은 마흔 무렵의 유명 만화가로 이미 많은 경험과 명성을 가진 남자다. 그에 반해 율리에는 몇 번의 전공을 바꾸어 겨우 자신의 진로를 찾은 사회 초년생이다. 사회적 위치와 연령대가 다른 두 사람이 함께 하니 서로의 입장이 다름은 당연하다. 특히 악셀의 생활양식에 맞추다보니 반짝였던 율리에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잊어간다.

율리에는 악셀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주인공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별을 고민한다. 바로 그때 그녀 앞에 운명처럼 새로운 남자 ‘에이빈드’가 나타난다. 에이빈드에게 끌리는 마음을 숨길 수 없던 율리에는 결국 악셀과의 사랑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한다. 이때 율리에의 마음을 포착하는 연출은 아름답다. 어느 아침, 율리에는 에이빈드를 만나기 위해 거리를 달려간다. 그 순간 도시의 시간은 정지되고, 우주는 마치 두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보인다. ‘델마’와 ‘라우더 댄 밤즈’에 이어 오슬로 3부작을 만든 트리에 감독의 작품답게 이번 영화에서도 오슬로는 연인들의 애틋한 마음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묘사되는데, 특히 율리에와 에이빈드가 함께 바라보는 석양이 지는 오슬로의 풍경은 그림 같다.

그런데 율리에의 이번 사랑도 위태하고 불안하다. 에이빈드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미래에 대한 회의감과 에이빈드의 결점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율리에는 전공을 바꿀 때도, 악셀과 이별할 때도 그랬다. 목표를 향해 돌진했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었다. 자신의 삶에서 조연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정작 주인공이 되기 위한 방법은 알지 못한 채 갈등을 외면해왔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도 일관된 흐름을 가지지 않는다. 율리에의 사랑과 이별이 주된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페미니즘 논쟁과 자연환경 문제까지, 그리고 어떤 죽음을 통한 삶의 성찰까지 하나의 영화가 여러 갈래로 분기한다.

율리에의 선택 또한 예상을 비껴가기 일쑤다. 율리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선택뿐만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감정도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다. 그로 인해 그녀는 이기적으로도 비춰지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공감이 가기도 한다. 우리 또한 율리에처럼 사랑에 빠지거나 이별로 방황했으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견디는 중이거나, 그 시기를 지나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이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 것임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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