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의 참살이 인문학] 선비의 마음과 시민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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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칼럼니스트

정년퇴직과 더불어 삶의 속도가 많이 느려지다 보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과 하지 못했던 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연구실 앞마당에 늘 그렇게 서 있던 소나무가 갑자기 예뻐 보이기도 하고, 무심코 지나치던 개천이나 비석에 서린 조상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찾아내고 크게 기뻐하기도 한다. 삶의 중심이 직장이 아닌 삶의 장소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식 소매상이 아닌 시간과 장소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삶의 공부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목숨 걸고 할 말 했던 남명 선생

지금 민주사회의 사표로 삼아야

‘건강한 상식’ 좇는 전문가 절실

아파트 숲이 되어 버린 그리고 지금 내 삶의 터전인 물금 평야에는 쓰라리거나 가슴 벅찬 역사의 흔적들이 많다. 제방 공사로 생긴 너른 들에서 일하며 살인적 소작료를 내야 했던 그리고 농민조합을 만들어 항거했던 일제 강점기의 농민들 이야기도 있고, 전통 시대 교통의 중심이었던 역참 황산역이 수탈의 정거장인 물금역으로 변해 갔던 이야기도 있다. 조금만 더 공부해 보면 목화와 메기처럼 지금은 거리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단어들에서도 이 땅에 살았던 민중의 고단한 삶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정자와 누각들에서 올곧은 선비의 기상과 풍류를 찾아 보는 공부도 재미있다. 김해시 대동면에 있는 산해정은 조선의 거유 남명 조식 선생이 18년간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곳이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향리에 머물면서도, 중요 고비마다 목숨을 건 상소를 올려 임금을 비롯한 벼슬아치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그의 올곧은 기상에 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과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품고 다녔다고 한다. 방울 소리를 신호로 내면을 다스리는 한편 필요한 순간에는 목숨을 건 실천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의 학문은 추상적 이념이 아닌 현실의 문제, 즉 실질을 중심으로 했으며 개념의 장난이 아닌 몸으로 습득하고 실천해 생명을 살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선비들 대부분이 그의 제자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학문이 어떠했는지 능히 알 수 있다.

1555년 단성 현감에 제수되자 이를 사직하면서 올린 상소문에서 그는 임금과 신하들의 무능과 부패를 통렬히 꾸짖는다. 크게 노한 임금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리하면 더욱 언로가 막혀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간언이 받아들여져 목숨을 구한다. 조선왕조가 5백 년이나 망하지 않고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위태롭게나마 언로가 열려 있었고 목숨을 걸고라도 할 말을 하는 올곧은 선비와 그런 실천적 학문이 살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백성 속에서 살며 그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여 함께 실천하는 선비의 마음이야말로 왕조시대의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백성이 주인인 민주 사회가 되면서 선비가 아닌 ‘백성의 마음’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으므로 다수결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다수결은 개인들의 판단을 모은 것이다. 그런데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는 없으므로 전문가라는 집단이 그 판단을 돕게 되었다. 학자, 교육자, 법률가, 의료인, 언론인, 종교인이 그들이다. 독재 정권 시절에 어용으로 흐른 전문가가 적지 않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조선시대의 선비가 했던 역할을 이들이 대신했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르면서 공익을 대변하던 전문가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백성의 마음을 대변하여 권력에 대항하던 전문가들은 이제 백성의 마음을 지배하여 권력을 얻으려 한다. 수사기관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사실을 가공하고, 언론은 사실에 대한 꼼꼼한 추적과 가치 판단을 버리고 검색과 받아쓰기의 기술자가 되고 있다. 학자들은 누가 보아도 표절이 명백한 논문을 표절이 아니라 하고, 의사들은 공공의료를 위한 의사 정원의 증원에 기를 쓰고 반대한다. 구원이 아닌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종교인도 적지 않다. 공익으로 포장된 주장과 행동 속에 자신들의 사적 이익이 섞여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사적 이익으로 오염된 전문가의 마음을 민주시민의 상식으로 정화해야 할 때다. 전문가의 영향과 사적 욕망으로 흐려질 수도 있고 일정한 방향 없이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치우침이나 견강부회가 없는 다수 시민의 건강한 상식이야말로 미래를 지도할 이념이어야 한다. 지금은 목숨을 건 상소 대신 다중이 주인인 민주 사회의 기준이 될 건강한 상식을 위해 싸우는 각 분야의 올곧은 전문가가 필요한 때이다. 이들이야말로 남명 조식 선생의 진정한 후예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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