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얼마나 달라졌을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수석논설위원

60여 년 전 부산 시민위안잔치
이태원 참사와 판박이처럼 흡사
우린 왜 후진국형 사고 반복할까

부산불꽃축제도 아찔한 순간 많아
축제 대비 철저한 사전 대책 절실
안전한 한국 전환 계기로 삼아야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억 번을 동시에 찔린 것 같았다.” 이태원 참사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참담한 심경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 ‘자식 잃은 부모’라고는 차마 못 부르겠다. 그래서 참혹할 참(慘)에 슬플 척(慽)을 써서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지난 주말 학업이나 취업 때문에 서울로 간 자식을 둔 부모들은 애간장이 탔다. 전화를 받지 않아 밤새 전화를 건 경우도 있었다. 지인은 아침이 되어서야 아들이 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그저 고마웠다고 했다. 부울경에 연고가 있는 사망자도 모두 8명이나 되었다.


이태원 참사는 이전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부산 시민위안잔치를 새롭게 소환했다. 1959년 7월 17일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이날 3만여 명의 시민이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피하려 좁은 출입구로 몰리면서 67명이 깔려 숨졌다. 당시 〈부산일보〉 7월 18일 자는 ‘시민위안의 밤서 대참사’라는 제목 아래 사고 소식을 전했다. ‘사고를 방지하고자 미리 동원되었던 70~80명의 경찰관은 소란이 일어나자 군중들의 동요를 제지하려고 약 50발의 공포를 쏘았으나 때마침 억수같이 퍼붓는 비바람 속에 사방의 아우성을 멈추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공포의 한 시간이 끝난 뒤에는 어린것들의 시체가 점점이 흩어져 있었으며 많은 신발이 낙엽처럼 뒹굴었다. 이러한 사고는 재작년 10월 제38회 전국체육대회 때에도 일어난 바 있으며, 작년도 시민위안의 밤에도 대혼잡을 이루어 부상자를 내었던 것이다.’ 사고 모습도 그렇고 참사의 조짐까지 너무 비슷해서 놀랄 정도다. 1959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6년밖에 되지 않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81달러에 불과했던 시절이었다.

대한민국은 세계인들이 가 보고 싶어 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그런데도 기차역, 공연장, 학교, 거리 등 곳곳에서 압사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왜 후진국형 사고를 반복하는 것일까. 지난 29일 이태원에는 13만 명이 몰렸는데 경찰 병력은 고작 137명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전날인 28일에도 여성들이 인파에 떠밀려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경찰과 용산구청은 CCTV로 이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우기니 억장이 무너진다.

외국에서 들어 온 이상한 축제에 가서 그렇게 된 거 아니냐고 비난하는 일도 제발 삼가자. 그건 외국인 희생자들에게 왜 이상한 나라 한국에 가서 사고를 당했느냐고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은 핼러윈데이가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 줄 다 안다. 기성세대가 보신각 타종을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처럼 핼러윈도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세상이 빨리 변하니, 내가 이해 못 할 일도 있기 마련이다.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BTS 공연장을 인원이 적게 들어가는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으로 변경한 것은 참 잘한 결정이었다. 5만 5000명이 몰린 이날 행사에는 보안요원, 자원봉사자, 지자체 공무원, 소방, 민간단체 등 2700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부산경찰청도 공연장 외부 질서 유지와 교통혼잡을 막기 위해 교통경찰 600명, 기동대 8개 중대 400명, 일선 경찰서 경찰관 240명, 경찰특공대 등 1300명을 배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아미(ARMY)가 있었다.

부산불꽃축제의 무기 연기도 아쉽기는 하지만 당연한 결정이다. 언젠가 부산불꽃축제에 참가했다 좁은 골목에서 인파에 떠밀려 이태원 참사와 유사한 체험을 한 뒤로는 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주변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산불꽃축제에서 여태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산불꽃축제 재개에 앞서 철저한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뒤 국민들은 오로지 안전한 대한민국을 바랐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그 믿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다시는 이 같은 사건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기는커녕 공직자의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행안부 장관은 당장 사퇴하는 것이 옳다. 부산에서 압사 사고가 난 1959년은 가난에 허덕이던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을 시도, 서울 인구 집중이 심화되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서울 초집중이 심해지다 보니 좁은 면적에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몰려도 사회가 무덤덤해지고 말았다. 학업과 취업으로 인해 힘든 서울살이를 하던 지방 출신 희생자들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미안하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