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는 BIFF뿐? 영화제 너무 많다? 둘 다 지독한 편견 [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8.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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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화지리지 2022 부산 재발견] 8. 부산의 크고 작은 영화제

BIFF 외에도 40개 넘는 다양한 영화제
특성·규모·가치 다른 소중한 문화 자산
영화 매개일 뿐 하고 싶은 이야기 달라
독서 모임처럼 '일상 영화제' 더 많아야

국내 영화제를 대표하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장면. 국내 영화제를 대표하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장면.

“영화제요? 부산국제영화제만 있는 것 아니었어요?” “이제 영화제가 너무 많은 건 아닌가요?” ‘신문화지리지 시즌 1’에선 다루지 않았던 주제인 ‘부산의 크고 작은 영화제’를 취재하면서 만난 관계자들은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 도서관이 몇 개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턱없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영화제도 그런 개념으로 접근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많든 적든 부산시 예산이 들어가는 영화제는 11개. 그것들을 포함해서 부산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는 2022년 기준으로 40여 개에 달했다. ‘동네’ 영화제나 ‘부대 행사’ 영화제는 빠질 수밖에 없었음을 미리 밝힌다. 한동안 지속했지만 폐지된 영화제도 지면 한계상 싣지 못했다.

제60회 작은영화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시간. 제60회 작은영화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시간.

■BIFF만큼이나 오래된 단편·독립영화제

1996년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BIFF·이하 비프) 명성과 규모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산에도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화제가 있다.

39회를 개최한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국내 최초의 단편영화제다. 영화의 뿌리라고 할 만한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매우 중요한 영화제다. 1980년 한국단편영화제로 출범해 7년간 격년으로 운영하다 2000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2010년(제27회)부터 현재의 이름인 부산국제단편영화제로 확대, 개편됐다.

부산독립영화제는 1999년 5월 ‘메이드 인 부산 독립영화제’로 시작해 2015년 부산독립영화제로 탈바꿈했다. 부산 영화를 소개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독립영화의 성과와 의미를 되돌아본다. 해당 지역에서 만든 영화로만 온전히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곳이 드문데, 부산독립영화제는 24회까지 한차례도 중단 없이 열리고 있다.

올해 처음 부산에서 열린 2022 아프리카영화제 공연 프로그램 ‘영화관 옆 음악카페’ 장면. 올해 처음 부산에서 열린 2022 아프리카영화제 공연 프로그램 ‘영화관 옆 음악카페’ 장면.

■“영화(제)는 좋은 수단이나 매개 될 수 있어”

부산이 ‘영화도시’로 명명된 데는 비프 덕이 크지만, 비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부산에서 열리는 다수의 영화제는 특성과 규모, 지향하는 가치는 다르지만 부산의 영화문화를 대표하는 자산이다.

17회를 이어 온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이하 비키)는 영화 관람 외에 영화를 매개로 한 체험과 교육 활동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상화 집행위원장은 “비키에서 영화는 수단”이라면서 “영화를 통해 감성을 키우고 정서적으로 충만을 얻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국제해양영화제 조하나 운영위원장은 “영화제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가장 핫한 플랫폼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해양이나 환경영화제처럼 특별한 목적을 가진 영화제들은 비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영화 상영 후 GV(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도 감독뿐 아니라 해양·환경·생태 전문가를 두루 투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9회 부산여성영화제를 주최·주관하는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석영미 원장은 “강의 몇 시간 하는 것보다 영화 한 편을 봤을 때 더 뚜렷하게 주제 의식을 전달하고, 논의의 장을 펼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같이 모여서 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영화제가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비프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우리 방식대로

자본의 논리가 영화의 다양성을 위협하지만, 여전히 국내외에서 영화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여러 방식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비프 기간에 맞춰 열리는 그림자영화제는 올해로 4회를 치렀다. 텀블러와 머그잔 등을 팔아서 후원금을 모은다. 그림자영화제 이수경 감독(집행위원장)은 “화려한 영화제 기간에 되레 더 외롭고 소외되는 경향이 있어 비프 기간에 맞춰 영화제를 연다”고 밝혔다. 이들은 거리에서, 노동 현장에서, 카페에서, 마을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틀고, 공연을 하고, 관객을 만났다.

‘작은영화영화제’를 5년째 이끄는 김미라 대표는 비록 작은 상영회 형식을 띠더라도 쉼 없는 ‘일상의 영화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60번째 상영회가 있던 날 김 대표는 “1년에 1500편 이상 만들어지는 단편영화가 각자의 주머니(장롱)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이날도 3편의 단편영화를 상영하고, 감독과 관객이 대화했다.

■콘셉트나 목적 생각하면 가성비 높은 영화제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 지원을 받든 그렇지 않든 저마다 겪는 가장 큰 고충은 재정 문제다. 최근 13회를 치른 부산평화영화제 박지연 프로그래머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너무나 큰 영화제를 본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기준을 비프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라면서 “이를테면 고추아가씨 축제처럼, 이야기하고자 하는 콘셉트와 목적을 생각하면 영화제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들이고도 거둘 수 있는 효과는 큰 편이어서 작은 영화제를 더욱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제1회 먼지[MZ]영화제를 공동 주최한 북구 화명동 복합문화공간 무사이 최용석 대표는 “요즘 청년들이 본의 아니게 개인화되어 있는데 영화제라는 과정을 통해 서로 간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무엇보다 청년들의 변화가 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올해는 부산시의 청년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이번 사업이 가능했지만, 지속 여부는 장담하지 못했다.

상영관 문제도 있다. 누구나 영화의전당 같은 시설에서 열 수는 없다. 부산평화영화제나 부산여성영화제는 여러 상영장을 전전하다 최근 중구 광복중앙로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 3층 모퉁이극장으로 옮겼다. 영화 상영 외에 부대행사를 열기도 좋아서 규모 면에선 만족할 만하단다. 그런데 이 건물엔 엘리베이터 시설이 없다. 명색이 차별을 없애자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제를 열면서 장애인 리프트 시설조차 안 돼 있는 곳을 상영 공간으로 정하려니 너무나 난감하다는 것이다.

■중소 영화제, 내년 시 예산 삭감 소식에 허탈

〈부산, 영화로 이야기하다〉를 펴낸 동의대 김이석 교수는 “부산이 영화제의 도시로 자리매김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영화제 기간에 집중된 열기를 일상에서 지속시키고 확장하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관객운동단체 모퉁이극장을 이끄는 김현수 대표는 “동네 작은 책방이나 독서 모임이 늘면서 독서문화가 커진 것처럼 영화 한 편도 그렇게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명히 영화 관람의 접근성은 확장되었지만, 영화를 보고 감흥을 나눌 장소는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의전당 이소영 시네마테크 팀장도 “영화제가 많다고 말하기보다는 본인의 기호에 맞는, 자기 감성에 어울리는 영화를 찾는 게 더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취재를 마무리할 즈음,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부산시 지원을 받는 중소 영화제들의 내년 예산이 대부분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크든 작든 모든 영화제가 생존 자체를 힘들어하고 있음이 역력한데 거기서 또 줄여야 한다니 그저 갑갑할 노릇이다. 마지막으로 부산시민들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영화제 목록은 몇 개인가요?”

특별취재팀=김은영 기획위원 key66@busan.com

사진 및 포스터 제공=부산일보DB·영화의전당·각 영화제

그래픽=비온후 김철진 대표 beonwhobook@naver.com

부산일보사·부산문화재단 공동기획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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