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골프공 자갈 모래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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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진 사회부 행정팀 차장

SNS에 떠도는 동영상 얘기다. 한 대학 강의실. 교수가 투명한 병을 꺼내 안을 골프공으로 채운다. 그 다음 자갈을 붓자 골프공 사이 공간이 들어찬다. 마지막으로 모래를 부어 자갈 사이 틈을 메운다. 교수는 말한다. 모래나 자갈부터 채운다면 골프공을 넣을 공간이 없을 거라고. 병은 ‘인생’, 골프공은 ‘가족’ ‘건강’ ‘친구’ 등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의미한다. 삶의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교훈은 직장·공부 등 다른 영역에도 두루 적용된다.

8년 전 봄. 서른세 번째 생일이던 그날은 유난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TV 화면에는 옆으로 반쯤 기울어진 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갑자기 화면 아래에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떴다. 〈부산일보〉를 비롯해 수많은 언론사가 ‘속보’로 이 소식을 전했다. 역대급 오보의 배경에도 잘못된 우선순위가 있었다. ‘팩트체크’란 골프공 대신 ‘속보 경쟁’이란 모래·자갈에 신경을 쓴 탓이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떠했나. 너도나도 ‘안전’을 외쳤지만 인재(人災)는 수시로 터졌다. 그러다 맞이한 올가을, 그동안의 외침이 헛구호였다는 게 ‘이태원 참사’로 여실히 드러났다. 왜 주최자 없는 행사는 안전관리 사각지대였을까. 왜 군중밀집 상황에 대한 안전 매뉴얼은 없었을까. 현장에 안전요원을 미리 배치했다면, 참사 징후 신고에 경찰·소방이 일찍 출동했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때늦은 후회가 꼬리를 물지만, 분명한 건 한국사회가 지난 8년간 ‘국민 안전’을 최우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태원 이후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지금껏 정부의 대처는 희망보다 실망에 가깝다. “경찰·소방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장관. 관광 이미지 걱정에 ‘참사 희생자’ 대신 ‘사고 사망자’란 용어를 써달라는 정부. 여전히 자갈과 모래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참사를 바라보는 일부 국민들의 시선도 우려스럽다. ‘애도를 강요하지 말라’는 반응부터 ‘좌파 집회 참가자들이 몰린 탓이다’ ‘특정인이 밀었기 때문이다’ 같은 확인되지 않은 뉴스를 믿고 퍼뜨리는 이들도 심심찮다. 한쪽에선 이태원에 놀러간 개인을 탓하며 희생자와 유족을 향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다.

국가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면 재발을 막을 시스템은 멀어진다. 이웃의 아픔에 무감각하고, 애도를 불편해하는 사회는 그래서 위험하다. 당국은 여러 대책 중 학교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못지않게 필요한 건 이웃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인성교육’이다. 학교는 약자를 돕고, 친구와 협력하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는 사회적 존재를 키우는 공간이어야 한다. 골프공의 중요성을 모르면 골프공부터 담을 수 없다.

SNS 영상에서 교수는 골프공과 자갈, 모래로 가득 찬 병에 마지막으로 맥주를 따른다. 아무리 인생이 꽉 차 보여도, 친구와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여유는 있다는 의미다. 그날 밤 이태원·홍대앞·해운대·광안리·집 어디에 있었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여유다. 지금은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도 막막한 모래틈을 비집고 위로와 치유, 희망의 공간을 찾아야 한다. 죽은 자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살아남은 자는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무엇부터 담을 것인가.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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