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의 시인의 서재] 오드리 로드와 유령의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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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시와사상’ 편집위원

흰 국화가 길거리에서 슬프게 울고 있다. 사거리에 걸린 플래카드의 흰 국화를 보면 우울해진다. 꽃 같은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의 비극은 오래도록 우리를 아프게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서울에 있던 아이를 만나러 갈 때면 지인들과 이태원 앤티크 거리를 방문하곤 했다. 처음 이태원에 갔을 때는 낮이었는데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스친다.

뉴스에서 들었던 이국적인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의외로 초라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앤티크 그릇을 수집하는 지인들과 가게도 둘러보고 방송인 홍석천 씨가 하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한 번은 저녁에 이태원에서 와인을 마셨는데 낮 풍경과 달리 분위기가 정겨웠다. 그 당시에도 해밀톤호텔 뒤쪽의 골목이 넓지는 않았다. 술집 내부가 숲속에 들어온 것처럼 아늑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났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핼러윈 축제는 다양한 가면과 분장 통해

또 다른 자아를 경험하는 공간이자 기회

우리 모두가 희생자를 위해 대신 울어 주고

겹겹의 오해와 편견 걷어 내는 계기 됐으면

핼러윈 축제는 기원전 5세기부터 아일랜드의 켈트족 문화에서 유래했다. 11월 1일이 모든 성인의 날인데 그 앞날인 10월 31일에 온갖 유령들이 출현한다는 이교도적 문화가 접목된 것이다. 유령에게 안 잡혀가려고 마녀와 괴물 등의 분장을 하고 이집 저집으로 돌아다니는 풍습이다. 아이들은 사탕을 얻으러 다니고, 사람들은 유령 가면이나 여러 복장을 하고 즐긴다. 우리의 탈춤처럼 가면을 쓰고 일상의 억압이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싶은 욕망의 표출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까닭은 이태원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게이 카페와 앤티크 가게도 있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사실 추석이나 설 명절에서 우리는 해방의 느낌을 누리지 않는다. 의무와 책임감에 다소 부담을 느끼는 것과 달리 핼러윈 축제는 그냥 즐길 수 있는 가벼움이 있다. 그들은 가면과 분장을 통해 전혀 다른 자아 혹은 아바타로 거리를 활보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의 흑인 여성시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1943~1992)는 서인도 제도의 그레나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한 후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다. 백인 동성애자 남성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고, 이혼 뒤에는 백인 여성과 새로운 가정을 꾸려 아이를 키우며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혼성 가족은 가부장제를 벗어난 공동체의 ‘돌봄’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는 시인, 교수, 이론가, 활동가로서 전 세계 디아스포라 흑인 여성의 삶을 시 속에 투영한다. 자신의 유방암 투병기도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우리 모두가 차별과 배제를 당할 수 있는 ‘흑인 어머니’의 입장임을 상기시킨다. 겹겹으로 쌓인 고난 속에서 ‘이성’보다는 ‘감정’을 느끼는 여성의 힘을 중요시한다. 미국 시단에 흑인 여성시인이 없었던 암흑기에 온몸으로 투쟁한 급진적 페미니스트로서 퀴어 이론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녀의 시집 〈블랙 유니콘〉에 실린 ‘후유증(Sequelae)’에는 아일랜드 민화에 나오는 ‘밴시(bansee)’가 모티브로 등장한다. 밴시는 구슬픈 울음소리로 가족 중의 누군가 곧 죽게 될 것임을 알려 주는 존재이다. 시적 화자는 밴시처럼 유령에 맞서 비명을 지른다. ‘나의 오래된 유령을 덧씌운/형상과 나는 싸운다/너는 흑인이며 여성이 아니라고 혐오하지/백인이면서 내가 아니라고 혐오하지.’ 이 구절에서 보듯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의 고뇌를 토로한다. 후반부에서 ‘내 손은 불이 붙어 비명을 지르는 칼을 움켜쥐었다/물고기로 가장한 거만한 여자가/걸인처럼/우리가 함께 나누어 쓰는 심장 속으로/칼을 더 깊이 더 깊이 내리꽂는다’라고 아주 강렬하게 호소한다. 우주선이 착륙하는 최첨단의 미국에서 차별과 억압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그녀는 유령의 목소리를 통해 표출한다.

로드는, 대신 울어 주는 곡비(哭婢) 혹은 밴시처럼 고통에 처한 이웃의 아픔에 깊이 공감한다. 그녀는 산문집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우리 여성들에게 시는 사치가 아니다. 시는 우리가 존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생명 줄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시가 가진 고유한 빛이 여성의 생존과 변화를 촉구해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로드처럼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분들을 위해 울고 있는 슬픈 유령들이다. 2014년 그 참혹한 세월호 사건을 겪은 이후에도,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기초 수영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설이 부족한 이유도 있겠지만 교육 행정이나 안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의 정치 문화에 ‘돌봄’이라는 개념이 일상의 작은 영역에 더 깊이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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