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품격 있는 '어른다움'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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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편집부 차장

어릴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저 자유롭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주민등록증을 받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어른이 되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스무 살을 넘겼으니 어른일 수도 있었지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어느 정도 자유롭기는 했다.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면서 조금은 어른이 된 듯 으스댔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시나브로 책임감을 알게 됐고, 비로소 어른이 된 게 아닌가 여겼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어른다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어른’인가 물으면, 지레 머뭇거리게 된다.

우리 사회가 선거를 통해 인정한 어른, 윤석열 대통령에게 시선을 돌려 본다. 지금 대통령은 캄보디아 프놈펜을 거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각국 정상들과 함께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해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 어른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MBC 취재진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 제한 조치 말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밤 11일부터 진행되는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과정에서 MBC 기자를 상대로 ‘전용기 탑승 불허’를 통보했다. 출입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전달했고, 사유는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고 한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은 외교, 안보 이슈와 관련하여 취재 편의를 제공해 오던 것으로,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가 반복되어 온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라는 내용이었다.

언론계는 반발했다. 대통령 전용기는 대통령의 사유재산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자원이며, 이용하는 언론사들은 각각 취재비용을 부담한다. 개인 윤석열의 자가용에 기자들이 얻어 타고 해외 취재 가는 것도 아닌데, 큰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표현했다. 게다가 왜곡, 편파 방송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도 이기적인 궤변에 불과하다. MBC는 지난 9월 대통령의 미국 순방 당시 비속어 파문과 관련한 보도를 가장 먼저 내보냈다. 다른 언론들도 뒤이어 유사한 보도를 했는데, 전용기 탑승 배제는 MBC에게만 통보됐다. 왜곡, 편파 방송이라는 것은 대통령실의 주장이며, 자신들을 비판한 언론을 길들이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과 언론이 대척점에 서지 않은 시기는 없었다.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 비판 견제하는 것이 무릇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언론은 그 속성상 늘 부딪히고 대립하는 관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그 범주는 매우 넓고 다양하며, 공적인 인물일수록 국민들의 알 권리가 더해져 언론의 자유가 더 강력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한계와 그 정당성은 국민이 부여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그것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위협 받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이번 조치는 대통령에게, 또는 대통령실에게 어떠한 실익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논란만 낳았다. 순방 일정 하루 전 일방 통보를 한 것은 마치 기분이 언짢은 대통령 부부의 화를 풀어 주려는 조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감정적이고 유아적인 결정인 셈이다. 대통령도 어른이 아니었고, 대통령실에도 누구 하나 어른다운 이는 없었다. 대한민국 정치 권력에게 품격 있는 ‘어른다움’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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