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만 민진당의 참패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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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까지 대만은 사실상 국민당 독재 체제였다. 독재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저항의 실체는 1986년 민진당 탄생으로 나타났다. 민진당은 민주투사로 유명했던 천수이볜을 앞세워 2000년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다. 4년 뒤 총통 선거에서도 이긴 민진당은 장기 집권을 꿈꿨으나 얼마 못 가 다시 야당의 길을 걸어야 했다. 절치부심하던 민진당은 2016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 후보가 압승을 거둠으로써 정권을 되찾은 뒤 지금껏 차이 총통 체제를 이어 가고 있다.

민진당은 창당 이후 반중(反中) 노선을 견지했다.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장제스 정부를 침략자로 규정하며 당헌에 대만 독립을 명시할 정도였다. 반중 노선은 필연적으로 친미주의로 흘렀고, 차이 총통은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요구를 거부하며 미국을 통해 독립 국가로 인정받으려 했다. 이런 흐름은 중국과 대만 사이 갈등을 넘어 미·중의 갈등으로 비화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가진 첫 대면 정상회담에서 갈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대만 압박을 중단하라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시 주석은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의 첫 번째 레드라인”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차이 총통을 비롯한 민진당은 이런 사정에도 미국과 더욱 밀착하고 중국과 거리 두기는 가속화했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은 참패했다. 선거가 치러진 21개 시·현 중 겨우 5곳을 얻었다. 그 충격에 차이 총통은 민진당 주석직을 내려놔야 했다. 대만 전문가들은 민진당 참패 원인으로 차이 총통의 지나친 친미반중 노선을 꼽는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거기에 반발한 중국의 대규모 군사훈련과 대만 상공으로 미사일 발사, 대만의 대응 포 사격 등 이번 선거 기간 중 몹시도 위태한 상황이 연이어 펼쳐졌다. 대만 유권자들은 불안했다. 미국을 믿기도 어려웠다. 2019년 중국의 홍콩 민주화 시위 진압 때 실질적인 방어막이 돼 주지 못했고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직접적 개입을 꺼리는 미국인 것이다.

요컨대 이번 민진당의 참패는 중국과의 파국을 우려하는 민심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대만의 상황이 우리와는 결이 다소 다르다고는 해도, 어쩐지 데자뷔처럼 겹쳐 보인다. 한·미동맹을 외치며 중국과 거리를 두려는 윤석열 정부의 모습이라 그렇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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