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비틀대는 춤 / 황용순(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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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물푸레나무 아래서 물들어 같이 춤출 무렵

당신은 결국 휘어지다 못해 꺾였습니다

한쪽으로 꺾인 당신 쪽으로 가 닿고 싶지만

나의 춤도 한 방향으로만 흔들댑니다

보이지 않아 당신이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 시집 〈어글리 플라워〉(2022) 중에서


시인이 추는 춤은 ‘한 방향으로만’ 흔들대는 춤이지만 그 춤은 마치 눈을 가리고 홀로 추는 춤 같다. ‘춤추는 물푸레나무 아래서’ 물들었는데, 결국 물든 것은 물푸레나무일까. 물푸레나무가 추는 춤일까. 같이 춤을 추고 있는 당신, 이라는 대상도 춤을 추지만 꺾여버리고 가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모두가 춤을 추면서 살아가지만, 대화도 연대도 이젠 쉽지 않은 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분명하게 파악해 보려는 시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보이지 않아 당신이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는 방향’처럼 자신이 추는 춤의 방향과 당신이 추는 춤의 방향, 당신이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는 방향을 발명해냈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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