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고려시대 사람들이 포도주를 처음 마셨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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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이대형

고려부터 현대까지 술 역사·문화 망라
‘조선 한양은 술의 도시’ 등 흥미로워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표지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표지

조선의 한양은 술의 도시였다. 한양의 술집을 묘사하는 특징은 주등(酒燈)이다. 한양에서는 깃발보다는 등으로 술파는 곳임을 표시했다. 1734년(영조 10)의 상소문에도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술집마다 술 빚는 양이 거의 백 석에 이르고, 주막 앞에 걸린 주등이 대궐 지척까지 퍼져 있을 뿐 아니라, 돈벌이가 좋아 많은 사람이 술집에 매달린다’며 양조의 병폐를 보고할 정도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한양 큰 거리의 상점 가운데 절반이 술집임을 지적하며 술집은 한양 어디를 가든 마주치는 하나의 풍경이라고 했다. 술의 과잉 소비로 양조용 쌀이 너무 많이 소진되어 쌀값이 뛰고 덩달아 물가도 오를 정도였다. 영조는 수시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음주 문화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금주령 중에도 술의 제조법은 지속적으로 발달하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술은 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기호식품으로 마시고자 하는 욕구를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 화가 김홍도의 ‘주막’. 시대의창 제공 조선 시대 화가 김홍도의 ‘주막’. 시대의창 제공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는 우리 술 전문가인 저자가 고려부터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까지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를 망라한 책이다. 객관적인 정보와 탄탄한 자료, 저자의 전문지식이 잘 어우러진 책으로 시대별로 우리 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와인(포도주)에 대한 문헌상의 언급은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사>에 포도주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려 충렬왕 11년(1285) 음력 8월 28일 ‘무진 원경 등이 원에서 돌아왔는데, 황제가 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하였다’라는 글이 포도주에 관련된 공식적인 첫 기록이다. 포도주가 원나라에서 제조된 것인지, 실크로드를 타고 온 유럽의 포도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 충렬왕 28년(1302), 34년(1308)에도 원 황제가 포도주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고려 왕실의 학자로서 1324년 원나라 과거 시험에 합격한 안축(1282~1348)은 투루판 사람으로부터 포도주를 선물 받고 시로 답례했다고 전해지며 이색(1328~1396)은 국내에서 열린 연회에서 포도주를 마신 감상을 한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막걸리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1915년의 <매일신보> 기사에는 ‘조선서 빚는 술이 얼마, 탁주 빚는 자가 삼십만’이라는 내용이 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막걸리를 마셨다는 것이고 또한 막걸리를 제조하는 사람만 31만 명이라니 엄청난 수인 것이다. 당시 인구를 1699만 명으로 추정하면 인구의 1.8%가 술을 만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도 성인을 기준으로 하면 술 만드는 데 관여한 사람은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전통주 분야에서 1988년은 아쉬움이 짙은 해라고 말한다. 1966년에는 막걸리 출고량이 전체 주류의 73.69%로 인기가 극에 달했으며 같은 해 소주 점유율은 13.97%, 맥주는 5.92%에 그쳤다. 하지만 막걸리 소비량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29.92%까지 떨어지면서 39.67%를 기록한 맥주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대중적인 술로 인기가 많았던 막걸리가 1988년을 기점으로 국민술의 타이틀을 맥주에게 넘겨준 것이다. 이처럼 책에는 알면 알수록 빠져들게 하는 우리 술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국 와인의 시초가 프랑스의 포도나무였고 식량 부족으로 만들어 낸 최초의 한국 와인이 구한말 나온 쌀포도주(머루와 쌀을 혼합해 만든 포도주)라는 내용도 흥미롭다. 일제강점기 ‘군산’과 ‘마산’이 쌀 수탈의 전초기지로 청주(사케) 산업을 발달시킨 도시가 됐다는 대목에서는 역사적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이대형 지음/시대의창/344쪽/1만 98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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