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간병살인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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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저는 나쁜 엄마입니다.” 수십 년간 돌본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인천의 60대 여성이 결심 공판이 열린 법정에서 울음을 쏟아 내면서 한 이야기다. 딸은 난치성 뇌전증에 좌측 편마비가 있었고 지적장애까지 앓는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었다. 엄마는 의사소통조차 힘든 딸의 대소변을 매일 받아내면서 38년 동안 극진하게 돌보았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딸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자 엄마의 지극정성은 결정적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여기서 끝내자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지난해 5월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가 아들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아들은 “누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하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이때까지 고생하고 망가진 몸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선처를 부탁했다.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인천지법은 지난 19일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형기준상 권고형인 징역 4∼6년보다 낮은 징역형을 선고한 것이다. 결심 공판에서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검찰도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오랜 간병생활에 지친 간병인이 피간병인을 살해하는 것을 간병살인이라고 한다.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9년 7월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80대 남성이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가장으로서 평생 가족들을 부양한 그는 20년 넘게 투병하던 아내를 홀로 간병했다. 그러다 아내가 담낭암 말기 시한부 선고를 받자 고통받는 배우자를 위하고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 주려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부산지법도 그해 살인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을 내렸다.

엄마라고 해서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인천지법은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이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롯이 자신들의 책임만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번 사건도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선처 이유를 밝혔다. 2018년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이란 기획기사로 국제앰네스티언론상을 수상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들은 “이 전쟁은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난다. 한국 사회가 우군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가족 간 살인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경고대로 간병 가족들의 극단적 선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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