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선사 과징금 부과의 역사적 부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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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한국해양대 항해융합학부 교수

공정거래법 위반 1763억 원 부과
정부 전반 해운 관련해 너무 몰라
해운시장 일반 경쟁이론 안 먹혀
자유경쟁 방치 땐 독과점시장 전락

지난해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외 15개 선사에 총 176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 선사들이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운임을 담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해당 선사들은 해운업계의 공동행위는 해운법(29조)에 ‘합법 행위’로 법정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과징금 부과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현재 총 11개 소송이 제기된 상태여서 향후 양측 간에 치열한 법정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접하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전반의 해운에 대한 몰이해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행위가 소비자를 위한 최고의 선이고, ‘공동행위는 이에 반하는 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쟁이 언제나 소비자들에게 유리한지를 사례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2008년 10월 EU는 ‘운임 및 선복량 통제 목적의 해운동맹’을 금지시켰다. 이후 원양 컨테이너 해운시장은 초대형 선사들의 과점시장으로 전락했다. 2022년 현재 선복량 기준으로 머스크, MSC, CMA-CGM, COSCO 등 4개 거대 선사가 컨테이너 선복량의 57.8%를 과점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021~22년 컨테이너 운임은 공급망 문제까지 겹쳐 사상 최고로 치달아 컨테이너 운임이 4배 이상으로 폭등했다. 화물을 운송해야만 하는 화주 입장에서는 폭등한 운임 이상을 지불하고서라도 화물을 운송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즉, 해운시장을 자유경쟁 체제하에 방치할 경우 강한 선사만이 살아남아 독과점시장으로 전락해 결국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 입증된 최근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해운업계조차도 해운 관련 법률, 계약, 관행 등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선사들의 협의체에서 최저운임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 해운법에 합법으로 명시된 공동행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에 문제가 될 소지가 없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해운 관련 관행이나 법률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상관행과 계약관습이 집적되어 국제협약으로 체계화되고, 이것이 다시 국내법으로 채택된 것들이다. 이러한 해상법률과 상관행들은 과거 이른바 ‘바다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던 시대에 선주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계약조건을 화주가 받아들여 계약이 되고 관행이 되어 입법화된 것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주의 항해과실 면책’이다.

이를테면 택배기사가 물건을 분실했을 때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해운에서는 ‘항해 중 선원의 과실로 인한 화물의 손해에 대해서는 선주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협약(헤이그-비스비규칙)과 우리 상법(795조 제2항)에서 확립된 원칙이다. 이것이 선주의 이익에만 부합되는 불공정한 거래로 보일 수 있겠지만, 화주에게도 이익이 되었기 때문에 국제협약과 국내법으로 입법화된 것이다. 왜냐하면 선주가 위험하거나 돈벌이가 되지 않아 특정 항로에 선박을 배선하지 않는다면 화주는 화물을 운송할 방법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선사들의 공동행위도 이와 비슷하다. 선사들이 협의체를 결성하게 된 것은 공동행위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의 시행으로 해운선사 간 통폐합을 경험한 선사들이 향후 과당경쟁을 막아 공동의 파멸을 막아 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자유경쟁 체제하에서는 항로에 선박들이 수요 이상으로 취항하게 되어 과당경쟁으로 이어지면 일부 선사들은 파산하게 되고, 살아남은 소수의 선사들이 항로를 과점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소수의 선사들이 운임을 자기 의지대로 올릴 수 있는 ‘독과점 해운시장’으로 전락한다. 2008년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진 원양컨테이너선 시장의 상황이 이를 입증한다.

근해항로의 공동행위가 불법화된다면 선사 간 치열한 집화 경쟁으로 일시적으로 운임이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경쟁열위에 있는 선사들이 도태되고 경쟁력 있는 선사들만 살아남게 된다면 운임은 다시 급상승하게 될 것이다. 경쟁체제하에 있을 때 손실을 본 생존 선사들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운임을 올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운시장의 속성이다. 공정거래를 위해 동종업자들이 담합하지 말고 경쟁하라는 것은 상식이고 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해운시장에서는 일반 경쟁이론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독과점 시장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파산의 교훈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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