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15만 원 운송마차 습격 사건, 그 진실은?
비겁한 근대, 깨어나는 역사/김진섭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조명
당시 신문 자료 바탕 활약상 정리
1920년 1월 4일 오전 8시 30분. 무장 경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일금 15만 원을 운송하던 마차가 습격당해 현금을 강탈당했다. 15만 원은 현재 가치로 따지면 최소 150억 원에서 최대 250억 원에 달하는 거금. 그 돈은 일제가 회령과 중국 옌지를 잇는 철도 부설을 위해 수송하던 자금이었다. 당시 그 지역에 기차가 없었기 때문에 마차를 이용해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롱징 출장소로 옮기는 길이었다. 이것이 ‘간도 15만 원 사건’으로 2008년 개봉해 한국형 퓨전 서부극으로 평가받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모티브가 됐다.
마차를 습격한 사람들은 윤준희 임국정 최봉설 한상호 박웅세 김준 등 6명의 북간도 지역 열혈 애국청년으로 대부분 철혈광복단 소속이었다. 철혈광복단은 1911년 초 이동휘(1873~1935)가 간도에 왔을 때 조직한 광복단과 이후 노령 지역에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에 조직된 전투적인 청년 비밀결사인 철혈단이 통합된 조직이었다.
‘15만 원 사건’은 간도 지역에 사는 한인의 삶과도 연관이 있었다. 간도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던 한인은 1860년대부터 피폐한 조선의 경제 상황과 부패한 관료의 학정 등 정치·경제적 박해와 궁핍에 시달리다 고향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은 농민이 대부분이었다. 또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주권 침입과 식민지 수탈에 항거해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기 위해 정치적 망명을 선택한 애국지사들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따라서 간도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봉건주의에 반대하고 일제를 배척하는 사상이 형성되었다. 특히 북간도 지역은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 전체 한인의 집단적 민족주의로 나타났고, 식민지 지배하에서의 민족주의는 열혈 청년들에게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한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비겁한 근대, 깨어나는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역동적인 활동을 다룬 책이다.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조금 낯선 독립운동가들이 어떻게 일제에 항거했는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그 치열했던 시대의 조각조각을 모아 정리했다.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관련 자료도 많지 않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내용은 제한적이다. 비록 단편적이지만, 당시 신문 자료와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활동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있다.
황해도를 대표하는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한 이진룡, 국내에 활동 근거지를 구축하며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헌신했던 우재룡, 우리 독립운동사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3·1운동과 관련해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한 이종일, 불교계의 3·1운동을 지휘한 뒤에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나라 최초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박노영, 3·1운동으로 체포돼 유관순과 함께 수감 생활을 했던 8호 감방 여성 독립운동가 동풍신과 어윤희, 김향화에 얽힌 일화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무장투쟁만이 독립운동의 전부는 아니었다. 김문필은 러시아에서 24년 만에 귀국해 마술사로 활동하면서 계몽운동을 도왔다. 그의 마술 공연은 순종이 직접 초청해 관람할 정도였다. 김문필은 국내에 들어오자마자 20여 명의 소년소녀를 모아 ‘조선예술단’을 창설해 공연했다. 그는 고국을 방문하는 과정에서도 자선 공연을 해 상당한 거금을 해외에 거주하는 어려운 동포들을 위해 지원했다. 하얼빈, 장춘에서 공연해 얻은 수입을 조선 동포 학교에 기부하며 젊은이들의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김진섭 지음/지성사/280쪽/1만 90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