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손 없는 윤이월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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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월(閏二月) 제사냐’라는 속담이 있다. 해야 할 일을 자꾸 빼먹거나 거르는 바람에 윤이월에 지내는 제사처럼 보기가 어려울 때 핀잔하는 말이다. 윤달인 2월이 매우 드물게 돌아오는 사실에 빗대 꼬집는 표현이다.

윤달은 평년의 12개월보다 1개월이 더해진 달을 일컫는다. 이는 달력과 실제 계절 간 차이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달을 기준으로 한 태음력에서는 1년 365일인 양력에 비해 약 11일이 부족한 일수를 모았다가 19년에 일곱 번 또는 5년에 두 번, 3년에 한 번꼴로 1개월을 추가해 윤달을 만든다. 그러지 않으면 달력상 연말연시에 더운 여름이 닥치고 5~6월은 한겨울이 돼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태양력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365.2422일 중 0.2422일을 모아 4년마다 하루를 보태 차이를 조정한다. 바로 2월 29일, 윤일이다.

계묘년은 윤이월이 든 해다. 지난 21일 음력 2월이 끝나고 22일 윤 2월 1일이 됐다. 이날 시작된 윤이월은 4월 19일까지다. 올 윤달은 2020년 윤사월에 이어 3년 만에, 윤이월은 2004년 이후 무려 19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우리나라 현대 사회에는 한 달 더 있는 윤달에 비어 있는 달, 썩은 달, 남은 달, 공달, 여벌달, 덤달이란 뜻으로 결혼과 출산을 피하는 풍조가 있었다. 젊은 층이 아예 결혼·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강한 요즘은 무의미해졌지만…. 이와 달리 조선 후기 문인 홍석모가 1849년 지은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윤달에는 혼인하기가 좋은 등 만사에 꺼리는 것이 없다고 했다. 예부터 선조들은 윤달을 날짜를 따라 여기저기로 다니면서 사람이 하는 일을 방해한다는 귀신인 손(損)이나 부정을 타지 않는 달로 여겨서다.

속담에 ‘윤달에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아무 탈이 없다’란 말이 있을 정도다. 손 없는 달인 셈이다. 그래서 평소 불길하다고 미룬 묘 이장 같은 궂은일을 치르거나 이사와 집수리, 수의 마련에 나섰던 게 윤달 풍습이다. 최근 윤이월을 앞두고 전국 화장장에서 조상의 시신·유골을 화장해 찾기 쉬운 납골당이나 봉안 시설로 모시려는 수요가 몰려 치열한 예약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글로벌 경기 둔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경쟁, 북핵 위협, 여야 간 정쟁, 여론 분열, 수출 부진, 무역수지 적자 누적, 고물가, 고금리 등 다양한 국내외 악재가 겹쳐 한국 경제와 국민의 삶을 짓누른다. 액운이 없다는 귀한 윤이월에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해소되면 얼마나 좋을까.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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