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한화·대우조선 결합심사 지연 이유는 ‘현중’ 탓?
석연찮은 발목잡기에 ‘현중 눈치보기’ 지적
산은도 이례적 입장문 “매우 아쉽고 우려”
지역사회 “마지막 기회 놓칠까” 전전긍긍
“꼬박 21년 만에 잡은 마지막 기회인데, 이러다 틀어지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 찾기가 해외 경쟁국 문턱을 넘고도 공정거래위원회 몽니(부산일보 4월 4일 자 13면 보도)에 하세월 하면서 지역사회와 연관 산업계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자칫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지역 경제와 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업계에선 공정위의 석연찮은 발목잡기를 두고 ‘현대중공업 눈치 보기’란 지적도 나온다.
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유럽연합(EU)이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승인하면서 해외 7개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심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이제 국내 공정위 심사만 통과하면 대우조선해양은 2001년 워크아웃 종료 후 21년 만에 새 주인을 맞게 된다.
그런데 믿었던 공정위에 발목이 잡혔다. 공정위는 앞선 현대중공업의 인수합병 시도 당시, EU가 ‘LNG 운반선 독과점 폐해’를 주장하며 반대하자 3년간 무려 4차례나 기업결합심사를 연장해주면 합병을 사실상 독려했다. 하지만 정작 경쟁국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한화에 대해선 ‘경쟁사 봉쇄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함정 주요 부품공급사인 한화가 함정을 만드는 대우조선을 품으면 특수선(방산) 분야에서 독과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자 의견 조회 결과에서도 복수의 사업자들이 함정 부문 경쟁사 봉쇄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그 중심에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실패한 현대중공업이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수상함 시장의 강자였지만, 경영 악화가 장기화하면서 현중이 시장을 장악했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원조 강자인 대우조선해양이 한화 품에 안겨 거침없이 성장하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현중 등 경쟁사들은 작년 12월 한화가 공정위에 기업결합 신고를 하자마자 총 4차례에 걸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합병이 성사될 경우, 그룹 내 방산 계열사들이 자신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기술 정보도 차별적으로 제공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화시스템은 함정용 레이더와 전투체계·통신체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함정 추진체계와 무장체계 등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방산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우려할 문제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함정 부품이 민간기업이 아닌 방위사업청에 직접 납품하기 때문에 가격이나 거래 조건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간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도급계약도 방사청이 사전에 입찰평가를 하는 탓에 차별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했다. 이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도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의 방산업체 매매 승인을 완료한 상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쟁사들이 연거푸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결국, 기업결함 심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국책은행이 산업은행도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업계 일방의 주장 때문에 국내 공정위 심사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이 매우 아쉽고 우려된다”면서 “정부가 최종 수요자로 기술, 가격 등이 강력히 관리되는 방산시장의 구조적 특성상 공정위가 우려하는 경쟁 저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짚었다.
이어 “만일 기업결합 무산으로 대우조선 정상화가 실패하면 국내 조선·방산업 경쟁력 저하뿐만 아니라 수만 명의 고용과 수백 개의 협력사 등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부작용 초래될 수 있다”면서 “그 책임은 명백히 공정위에 있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지역사회의 불안, 걱정도 같은 맥락이다. 2019년 1월 현중 매각 발표부터, EU 불승인으로 합병이 무산된 작년 1월까지 꼬박 3년을 허송세월하며 경험한 악몽이 되풀이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한화그룹 인수합병 소식에 반색했던 시민사회와 정치권, 산업계, 노동계는 다시 한번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종우 거제시장은 “거제시와 24만 거제시민은 대우조선해양이 하루빨리 정상화되어 지역 경제 발전의 중심축으로 재도약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서 “간절한 염원이 하루 빨리 이뤄지도록 공정위는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