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국회의원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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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각종 의혹 사건의 중심인물이 되곤 한다. 어떤 의원의 아들은 5년 9개월을 근무하고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는가 하면, 또 어떤 의원은 코인 투자로 산정하기 어려운 이익을 얻었다. 이들은 모두 국민의 많은 지지로 당선됐다. 이 중에는 국회사무처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 국회의원상, 국회를 빛낸 바른 정치언어상을 받은 의원도 있다. 다들 높은 학력과 다양한 역량을 갖춘 인물들인데도,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획득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왜 우리 정치는 늘 이런 모습일까?

일본인 오구라 기조는 한국학 연구자이다. 현재 일본 교토대학 교수인 그는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에 서울대 철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해 1996년 귀국할 때까지 8년간 성리학을 비롯해 한국 사회의 특질을 연구하였다. 1998년 오구라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2011년엔 다시 문고판을 냈다.

각종 의혹의 중심인물 국회의원들

왜 우리 정치는 늘 이런 모습일까

일본인 학자, 한국 사회 분석 눈길

지금도 조선처럼 도덕 지향 선호

의원들, 양반처럼 우월 지위 누려

아직도 작동 중인 구조 탈피해야

이 책은 2017년 우리말로도 번역됐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우선 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우리 사회의 전개 과정을 성리학에서 연원한 이기론(理氣論)이라는 관점에서 개관하고 있다. 둘째는 우리의 언어 습관 중에 ‘나, 너, 님, 놈, 우리, 남’의 사용법도 이기론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기론이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근본 원리인 이와 물질적으로 이를 구현하는 기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하는 성리학의 논리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은 이이고, 진흙으로 빚은 아담의 형상에 불어넣은 숨결은 기다. 성리학에선 천리(天理)나 우주의 이법이라는 의미이고, 기독교에선 하느님일 수 있는 이는 현재 진리, 원리, 윤리, 논리, 심리, 생리, 물리 등으로 분화되었지만, 이상·보편·당위·도덕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이에 대해 기는 현실·특수·혼탁·육체를 뜻한다. 이는 보편적인 원리이자 절대적인 규범이다. 당연히 이는 기의 원리이지만, 이가 온전히 구현되지 못하면 기에서는 차등이 생긴다. 하느님의 숨결을 불어 넣었지만, 아담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원죄를 지은 것과 다르지 않다.

성리학적 논리에 따르면 현실 세계에는 이를 충분히 갖춘 훌륭한 사람인 ‘님’이 있는가 하면, 탁한 기가 강한 ‘놈’이 있다. 나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님도, 놈도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부모들은 자식을 님으로 만들려고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 시대 이래 머리를 쓰고 마음을 쓰는 님이 몸을 쓰고 힘을 쓰는 놈을 지배하며, 님이 사회의 상층을 차지하고 놈을 교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님은 유교 경전을 공부하고 인의예지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학습한 존재들이었으므로, 학술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우월한 존재였다.

오구라는 지금도 우리 사회는 조선처럼 모든 것을 도덕의 문제로 귀결시키려 하며, 정치 현실에서도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고 갈파했다. 독재와 민주, 군사정권과 문민정권, 재벌과 노동자, 현재의 여당과 야당도 한결같이 상대의 도덕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도덕적 우위를 점하여 권력을 잡게 되면 부가 함께 따라오는 도덕·권력·부의 삼위일체적 관계야말로 조선 시대 이래 유지되어 온 우리 정치의 기본 구조인 셈이다.

도덕적 선명성을 주창해 권력을 잡았지만, 그 권력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도덕성을 상실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고, 많은 국민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치에는 도덕적 우월성이 아니라 정책의 유효성이 더 중요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선거에서는 상대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국민들도 정치인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여전히 우리는 도덕 지향적이다.

현재의 국회의원은 조선 시대의 ‘이’이자 ‘님’과 다르지 않은 위상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님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지금의 국회의원님들은 유교가 부르짖는 인의예지나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가르침과는 전혀 무관한 존재들이다. 재력이 있거나 사회 활동을 했거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조선 시대처럼 성리학적인 논리나 도덕적 우월성을 담보하는 존재가 아니다. 유교 경전을 달달 외우며 끊임없이 도덕을 학습했던 양반님들도 탐관오리가 되어 가렴주구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의 국회의원님들은 권력을 갖고는 있지만 도덕성을 확보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여전히 님으로 여기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분이라고 여긴다. 조선은 멸망했지만, 조선의 기획은 지금도 작동 중이다. 국회의원이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는 회의 시간 중에 코인 투자를 할 지경이라면 더 이상 국회의원을 조선 시대의 양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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