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노을 빌라 / 최해숙(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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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한 난간이 노을에 매달릴 무렵

싸이렌을 분수처럼 뿜으며 구급차가 왔다

들창은 순식간에 알전구를 매달았다

의혹의 눈빛들 긴박하게 사다리를 타고

새 한 마리 핏빛 서녘을 찢고 날아갔다

심장의 파편이 쿵쿵 떨어져 내렸다

저녁이 없는 삶의 허기는 저녁으로 몰려오고

어둠은 언제나 무거운 쪽으로 내린다

주홍색 요원이 바람을 넣자 구겨진 빌라가

개업집 풍선처럼 일어났다

희붐한 저녁이 헐떡이는 숨결을 가만히 보듬어 주었다

(하략)

- 앤솔로지 〈경남시학〉(2021) 중에서

상황을 옮겨 놓은 듯한 시가 있다. 기본에 충실한 시인의 태도이다. 여기에 묘사가 들어서고 새로운 인식이 생성되면 좋은 시가 된다. 시인은 빌라에 구급차가 오는 것을 보고 있다. 구급차가 있는 풍경은 고요한 공동체 건물에 파장을 일으킨다. ‘들창은 순식간에 알전구를 매달’고 ‘심장의 파편이 쿵쿵’ 거린다. ‘저녁이 없는 삶의 허기’도 엄습해온다. 저녁이 있는 삶을 주창했던 한 정치인의 구호도 떠오른다. ‘바람을 넣자 구겨진 빌라’가 일어나고 저녁은 다시 삶의 숨결을 보듬는다. 아프지만 우리네 삶이다. 먼 지역에서 빌라 전세 사기다 뭐다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이 시가 떠오른다. 이제 평화로운 저녁이 있어야겠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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