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엔테크 열풍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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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나락으로 떨어졌던 일본 경제는 1950년대부터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한국전쟁 특수가 밑거름됐다. 1980년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30년 걸린다’ ‘50년 걸린다’는 말이 회자되던 것도 이 무렵이다. 1988년 시가총액 세계 1~50위 중 33개, 1~20위 중 16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1위 일본 NTT는 2위 미국 IBM과 시총에서 3배 차이가 났다. 당시 1년 만에 도쿄 전체 땅값이 3배나 뛰었다. 도쿄 긴자의 제일 비싼 땅이 ㎡당 10억 원에 육박할 정도였다.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일본 거품 붕괴의 단초가 된 것은 1985년 플라자 합의였다. 미국 경제는 추락하는데 일본은 엔저를 틈타 야금야금 이득을 챙겼다. 미국 대외무역 적자의 40%가 일본과의 사이에서 발생했다. 참다못한 미국이 G5(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재무장관을 뉴욕 플라자호텔로 불러 모았고 달러 가치 절하를 밀어붙였다. 1달러에 250엔이던 엔·달러 환율은 120엔까지 떨어졌다. 달러 가치를 50%나 떨어뜨린 것이다. 엔고로 인한 수출경쟁력 하락은 일본의 경제성장에도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호황의 달콤함에서 깨어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 대신 금리를 인하해 시장 유동성을 늘리는 방안을 택했다. 대출받아 부동산을 사 놓으면 오르고 그 부동산으로 또 대출받아 거품을 키웠다. 1989년 12월 29일 38957.44포인트까지 올라 40000 고지를 목전에 두고 장밋빛 전망이 넘치던 니케이 지수는 해가 바뀌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이었다. 그 10년은 20년이 되고, 30년이 됐다. 거품의 크기만큼이나 불황의 골도 깊었다.

최근 일본 경제가 엔저를 기반으로 꿈틀대며 장기 불황 탈출의 기대감을 높인다. 19일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이 100엔당 897.49를 찍어 8년 만에 900원대가 무너졌다. 일본 여행과 환차익을 노리고 원화를 엔화로 바꾸는 환전 규모가 전년 대비 5배나 늘었다. 일본 증시도 33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국내 증권 창구에는 일본 주식에 대한 매수 주문이 크게 늘었다. ‘노 재팬’이 아니라 ‘바이 재팬’이다. 한일 관계 개선 분위기 속에 맞는 일본 경제 부활이 달갑지만은 않다. 양국 산업구조상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 경제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아서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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