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현대·삼성·한화 빅3 싸움에 등 터지는 중형조선사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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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사회부 차장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조선소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임금 사업장이었다. 글로벌 물동량 증가로 인한 ‘수주 대박’으로 초호황을 누리던 2007년, 10인 이상 사업체 조선업 종사자 1인당 평균임금은 4340만 원으로 제조업 종사자 평균인 2910만 원의 1.5배에 달했다. 노동시간 제한도 없던 때라 평일 잔업은 물론 토?일요일 특근까지 불사하면서 직장인의 꿈인 ‘억대 연봉자’도 심심찮게 탄생했다.

그런데 2015년을 기점으로 한때 구세주라 여겼던 해양플랜트에서 천문학적 손실이 발생하고 수주 절벽까지 찾아오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2018년 조선업 4340만 원, 제조업 4470만 원으로 역전됐고, 이듬해인 2019년에는 조선업 4020만 원, 제조업 4630만 원으로 격차는 더 벌어졌다. 가뜩이나 부족한 일감에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잔업과 특근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2015년 대비 최저임금은 64.2% 올랐지만 조선 노동자 실질임금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이렇다 보니 앞선 구조조정 과정에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조업 현장에선 모처럼 맞은 수주 풍년에 일감은 넘쳐나는데 정작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서 조사한 ‘경남 지역 중소형조선사 기능직 필요-부족 인력’ 자료를 보면 작년과 재작년 수주한 선박 건조가 본격화하는 연말부터 전국적으로 1만 명, 경남에서만 최소 4000명 이상을 충원해야 정상 조업이 가능하다.

이 와중에 정작 조선업계는 엉뚱한 집안싸움으로 시끌하다. 논란의 중심에 맏형인 ‘HD한국조선해양’이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HD현대그룹의 조선부문 중간지주회사다. HD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3사를 거느리고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업계 부동의 1위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얼어붙었던 업황이 2020년을 전후해 살아날 조짐을 보이자 경쟁사 인력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는 통에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실제 현대 3사는 업계 2, 3위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대한·케이조선 등 중형사 인력까지 끌어왔다. 최근 2년 사이 흡수한 인원만 400명이 넘는다.

부당하게 인력을 뺏겼다고 주장하는 조선사들은 작년 8월, 한국조선해양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조사는 소걸음이다. 참다못한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최근 맞대응에 나섰다.

한화오션은 임금 인상 등 노동자 처우 개선을 약속하며 연말까지 직무와 규모 제한 없이 경력직 상시 채용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중공업도 해양플랜트 기술 인력을 중심으로 인재 확보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형사 간 인력 쟁탈전이 본격화하면서 지킬 여력이 없는 중형사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인력 운용이 제한적인 중형사는 1인당 업무 범위가 넓어 유출 공백이 더 크고 충원도 쉽지 않다. 잔류 인원 업무 강도는 높아져 전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대형사에 인력을 뺏긴 중형사는 빈자리를 다시 중소 기자재 업체에서 수혈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다.

업계에선 중형사를 가리켜 조선산업을 지탱하는 척추라 칭한다. 척추가 무너지면 몸도 망가지기 마련이다. 대형사의 과잉 경쟁이 자칫 산업 전반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야 할 시점이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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