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임란 이후 냉혹한 열국지 상황이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김시덕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좀 알려진 문제작이다. 2015년 첫 출간됐고, 지난해 재출간된 책이다.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 년사’가 부제다. 한국인 저자의 책인데 동아시아 역사를 일본적인 시각으로 보는 책이 아닌가 하는 혐의가 없지 않다. 결국 세계사를 유린한 이른바 ‘잘난 서구적 근대성’에 입각해 동아시아사를 해명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이 책인가. 상당히 새로운 시각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시각에서 무엇을 건져낼 수 있으면 읽을 가치는 있는 셈이다.
북쪽으로 청나라, 남쪽으로는 일본
한반도 지정학적 요충지로 떠올라
한미일, 한미중 삼각 구도 넘어서야
동아시아 역사에서 1592년 임진왜란이 ‘현대의 시작’이었다는 데는 상당한 합의가 이뤄져 있다. 이 책은 그 점을 예각화시켜 임진왜란이 한반도를 지정학적 요충지로 처음 부각시켰다고 본다. 이전까지 한반도와 중국의 국가 존망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외부 세력은 거란 여진 몽골 등 북아시아 민족이었는데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강력한 해양 세력으로 역사상 처음 떠올랐다는 것이다. 일본이 부상한 것은 100년간 전국시대를 거치며 풍부한 실전 경험을 지닌 대규모 병력이 있었고, 유럽 해양 세력과의 접촉으로 확보한 해외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어쨌든 북쪽이 문제였는데 남북이 다 문제가 되면서 그 사이에 놓인 한반도가 ‘지정학적 요충지’가 됐다는 소리다.
임란 이전부터 동아시아가 소용돌이쳤다. 1500년대 일본열도 전국시대에서 비롯되고, 한반도 세력이 일본의 호전적인 군사 세력을 막지 못해 시작된 연쇄반응은 임진왜란, 누르하치의 여진 통일, 홍타이지의 대청국 건국, 정묘·병자호란, 청의 북경 함락, 1683년 청의 타이완 점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책은 ‘한반도와 타이완은 유라시아 동해안에 존재하는 두 개의 중심점이자 약한 고리’라고 보는데 이는 무슨 소리일까. 해양과 대륙이 맞서는 지정학적 요충지가 됐다는 것일 테다.
이 책은 거기에 ‘러시아 등장’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하나를 더 추가한다. 일본과 청이 떠오르던 16세기 말, 동아시아는 삼국지에서 ‘열국지’로 바뀌고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 정복의 포성을 울리며 50여 년 만에 유라시아 동쪽 오호츠크·캄차카까지 쇄도해 동아시아에 세차게 등장했다. 이후 ‘열국지 충돌’은 예견된 것이었는데 1650년대 조선-청나라 연합군이 만주 외곽에서 러시아를 공격한 나선 정벌은 맛보기였고, 1806~1807년 러시아와 일본이 사할린과 쿠릴열도에서 무력 충돌한 것은 서막이었다. 1904년 러일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것이었다.
당대에는 ‘국가’라는 것만이 새로운 세계를 넘실대며 오간 게 아니다. 전란과 표류에 의해 사람도 ‘새로운 저쪽’에 닿는 일이 흔했다. 1802~1805 초 문순득이 류큐 필리핀까지, 1756~1757년 이지항이 홋카이도 사할린까지 갔다 온 것은 알려져 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있다. 17세기 임란 때 조선인 포로로 끌려간 이들 중 ‘빈센트 권’은 조선에 가톨릭을 포교하기 위해 명에 갔다가 일본으로 되돌아간 뒤 순교했고, ‘줄리아 오타’라는 조선인 여성도 그 대열이었다. 조선인 소년 포로 ‘가이오’는 가톨릭교도로 1614년 필리핀으로 추방됐다가 다시 일본에 잠입해 포교하다가 1624년 순교했다.
‘마누엘’ ‘마리나 박 수녀’ ‘토마스’ ‘가스파르 바스’ 등도 조선인 포로였는데 마닐라 캄보디아 마카오를 오가며 포교하다가 순교한 이들이다. 일찍이 동아시아를 종횡한 그들은 ‘계급 질서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새로운 깨달음’에 눈 뜬 사람이었다. 지정학적 요충지, 열국지 등등의 변화 속에서 동아시아 사람들이 그렇게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질서는 냉혹한 법이다. 조선은 식민지, 청은 반식민지, 일본은 제국주의 길을 걸었다. 1863년 영국과 충돌한 사쓰에이 전쟁, 1863~1864년 서구 4개국 연합과 충돌한 세모노세키 전쟁에서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패배하면서 상대의 압도적인 힘을 실감한 일본은 서구 세력에 급속히 접근했단다. 그러나 3년 뒤인 1866년 프랑스를 물리친 조선은 국제 정세에 둔감해졌다. ‘잘 진 것은 잘못 이긴 것보다 낫다’는 아픈 격언이 적용되는 예란다.
조선은 왜 식민지로 전락했던가. 많은 요인들이 있다. 그중 이 책은 1905년께까지 조선은 중앙 정부와 지방관의 수탈로 민중 불만이 쌓여 여차하면 정변이나 혁명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상하의 계급차로 인한 상실감이 적으면서 사회 시스템이 견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연 조선인들은 정부 수탈, 계급 압박, 관리의 탐욕이 없는 만주와 연해주로 피난해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을 가열하게 벌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 뒷부분은 다시 ‘삼국지가 아니라 열국지’라는 관점을 강조한다. ‘한미일’ ‘한미중’의 삼각 구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 너무 기대서 안 된다고 하면서, 미·일이 철썩같이 붙어 있는 상황을 너무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을 내민다. 현실은 냉혹하고, 독자 판단은 여러 갈래일 것이다. 김시덕 지음/메디치/372쪽/2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