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극한 호우와 극한 보도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오송 참사 보도하며 흥미 위주로 접근
문제의 본질·해결 방안과는 거리 있어
재난은 되풀이되고 피해 커지는 추세
예방대책 마련에 도움 되는 언론 필요
무더위와 태풍, 홍수 등 온갖 재난으로 유난히 고통스러운 여름이다. 올해는 수십 년 만에 역대급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극한 호우’라는 생소한 용어가 한동안 일상어처럼 통용됐다. 물론 자연 현상 자체는 불가항력일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사회의 몫이다. 이 점에서 지난달 15일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한국 사회의 허술한 현주소를 잘 드러낸 사건이다. 이 참사는 언론 보도 측면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준다.
뉴스거리로서 재난은 상당히 ‘극적’인 요소를 갖추었다. 자연의 거대한 힘이 평범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한순간에 앗아 가고, 친숙한 도시 경관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우리는 거실에 편안히 앉아서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언론은 폭우가 휩쓸고 간 폐허와 참사 현장을 자세하고 생생하게 중계했다. 특히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많은 희생자를 냈는데, ‘사회 초년생’, ‘결혼 두 달 새신랑’ 등 희생자 개개인의 사연은 그 평범함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다.
‘극적’인 이야기에는 어떤 형태든 보는 이의 감정을 최대한 자극할 등장인물이 필요하다. 오송 참사 보도에서는 참혹한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구조한 영웅이 출현했다. 물에 잠긴 지하차도에서 여러 사람을 구출한 화물 트럭 기사가 그 주인공이었다. 언론은 그를 ‘작은 영웅’, ‘지하차도 의인’이라는 표현으로 칭송했다. 더 나아가 이 주인공을 도운 다른 작은 영웅들도 부각됐다. “오송 비극 그날… 구원받은 손으로 또 다른 생명 구했다”(조선일보), “지하차도 의인 더 있다… 생사기로 속 서로를 구한 시민도”(SBS) 같은 제목은 이 선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민이라는 점을 강조해 더 큰 감동을 준다. 사고 후 트럭 기사에게 쏟아진 온정은 이 작은 영웅에 대한 사람들의 감동과 열광을 보여 준다.
오송 참사 스토리에서 영웅이 있었다면 악역도 필요했다. 지하차도 참사는 ‘막을 수 있었던 참사’, ‘총체적 인재’로 규정되었고, ‘늑장 대응 의혹’, ‘위험 신고 13번 무시’, ‘책임 주체’ 같은 표현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공직자들이 참사의 주범처럼 지목됐다. 이에 맞춰 경찰, 소방, 지자체 공무원 등 관련 기관의 36명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부적절한 발언이나 처신으로 악역에 오른 인물도 있었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현장에 갔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분노의 표적이 됐다. 대통령도 해외순방 중 비슷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언론의 비난은 사고 현장과 좀 더 직접 관련된 충북지사에게 집중됐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하필 폭우 기간에 골프를 치러 간 돌출행동이 문제가 됐다. 홍 시장은 “공직자들의 주말은 자유”라며 반박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언론에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다. 언론에서는 홍 시장이 주말에 개인 프라이버시를 누리는 동안 대구시 공무원 1014명이 비상대기나 근무 중이었다고 지적해 여론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재난 보도를 공동체의 위기와 영웅, 악당 등으로 이루어진 극적인 드라마로 구성한 덕분에, 뉴스의 흥미도와 흡인력은 매우 높아졌다. 아울러 이 국가적 위기에서 문제점의 소재와 해결책도 사실상 명쾌하게 지목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보도방식은 큰 허점을 갖고 있다. 과연 이번처럼 극한 호우가 초래한 비극을 과연 일부 ‘나쁜’ 공직자의 처신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많은 시민에게 드라마 같은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지만, 문제의 본질이나 해결책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여러모로 이번 극한 호우에서 빚어진 참사와 부실 대책은 기시감이 매우 높다. 오송 참사는 피해 지역과 사람만 바뀌었을 뿐 불과 3년 전 부산 초량동 지하차도 참사와 빼박이다. 집중호우 기간 중 임시 제방이 터져 큰 피해가 발생한 것도 이미 여러 번 경험한 패턴이다. 재해는 매년 되풀이되면서 비극적 사례가 누적되고 있는데, 재난 대비에 어떤 교훈을 얻었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현장은 매뉴얼과 딴판으로 겉돌고 예방대책이 개선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연민과 분노를 자극해 흥미를 북돋우는 방식으로만 재난 소식을 보도해 온 언론 관행도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장마철과 여름의 호우가 극한으로 변해 갈수록, 보도는 ‘극한’ 형태에서 벗어나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영웅 만들기와 악당 추적 같은 극적이면서 손쉬운 보도보다는 허술한 재난 관리체제 전반을 철저하게 추적해 장기적으로 예방대책 마련에 도움이 되는 보도에 더 힘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