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부산 역전 대화재 아픔 담긴 김종식의 ‘인간가족’
‘남장 김종식, 중구에서 주민들과 함께 그 생애를 이야기하다’
부산중구문화원·복병산작은미술관 10월 10일까지 전시
부산 화단을 지키고 가꾼 1세대 화가. 부산 중구에서 살았던 고 김종식 화백 작품 전시회가 부산 중구에서 열린다.
부산광역시중구문화원은 ‘남장(南藏) 김종식, 중구에서 주민들과 함께 그 생애를 이야기하다’전을 오는 10월 10일까지 부산중구문화원과 복병산작은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김 화백이 30년 이상 살았고, 마지막까지 아틀리에로 활용했던 대청동 옛 김종식기념관과 인접한 장소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전시는 1950~1980년대의 작품을 연대별로 보여준다. 드로잉·유화 등 작품 30여 점과 사진, 김종식 탄생 100주년 기념 영상을 전시한다. 원승덕 조각가가 제작한 김종식 화백 흉상도 함께 소개된다. 모두 김종식미술관 소장품이다.
김 화백은 1918년 부산 장전동에서 태어나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에 입학했다. 일본인 미술 교사에게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 화백은 일본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미술대학)로 유학을 갔다. 1942년 귀국해서 작품 활동을 하며 부산, 진해, 양산, 김해 등에서 미술 교사로 일했다. 또 김 화백은 1968년부터 1983년까지는 동아대 교수로 부산의 미술인을 양성했다. 김 화백은 첫 개인전을 자신이 재직하던 동래공립중학교(현 동래고) 강당에서 1946년에 열었다.
부산 화단 1세대 김종식 화백
아틀리에 있는 대청동서 전시
부산중구문화원 30여 점 소개
1947년 김 화백은 중구 대청동에 자리를 잡았다. 아들인 김헌 김종식미술관 이사장은 “집을 구입해서 양옥과 한옥이 절충되는 방식으로 고쳐서 살았다”고 회상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인간가족’(1954)도 이 집과 관계가 있다.
1953년 부산 역전 대화재로 김 화백의 자택도 작품도 모두 불에 탔다. 김 헌 이사장은 “모든 것이 사라져 세상이 암흑천지였고, 작가로서 절망적인 상태였다”며 “화마의 불길이 가진 여운이 아버지 뇌리에 박혀서 모두 붉은색으로 표현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식 화백·부인·자녀들이 함께 서 있는 배경인 집에 대해서 김 이사장은 “기존 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고, 마음속 집을 구상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화가에게는 아틀리에가 있어야 한다며 친척 집에 가서 자금을 빌려서 화재 이후 우리 집을 제일 먼저 착공했는데, 그때 집의 설계가 그림과 같은 형태로 드러났다”고 했다.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아틀리에에서 김 화백은 ‘부산항 석양’(1956) 등 부산항 연작을 완성했다.
‘제비’(1954)는 처마 끝에 날아드는 제비와 마루에 앉은 노인을 대비한 그림이다. 1988년 발간된 <김종식 화집>(부산일보사)에서 김해성 미술평론가는 ‘제비’에 대해 ‘때맞춰 제집에 돌아온 제비들의 무상한 비상과 다르게 무심하게 앉아있는 노인의 표정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수심에 찬 기다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했다.
부산중구문화원 2층에서는 김 화백이 스스로 ‘새로운 남화’라 부른 1970년대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담아낸 1980년대의 ‘명상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천마산’(1977) ‘영도’(1977) ‘불상’(1986) ‘동삼동 풍차’(1987) 등이 전시된다. 1988년 작고한 김 화백의 마지막 작품은 ‘떠오르는 꽃’이다. 김 이사장은 “88년 초 봄이 오기 전에 그린 작품인데, 아버지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간신히 추스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생전에 김 화백은 32절 스케치북을 늘 가지고 다녔다. 김 화백의 제자였던 부산중구문화원 채경혜 사무국장은 “선생님은 명상하는 기분으로 끊임없이 선을 그으면서 그 위에서 형상을 잡아가셨다”고 했다. 채 사무국장은 “선생님이 창작 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중구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중구민들이 지역 미술가에 대해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1933년에 건립된 부산중구문화원(옛 다테이시 주택)에 딸린 일본식 창고를 개조한 복병산작은미술관에서는 김 화백의 드로잉 복제품이 전시된다.
한편 부산중구문화원은 오는 9월 7일 오후 4시 워크숍을 개최한다. 김헌 이사장과 이상수 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이 김 화백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