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가치동맹과 가치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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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최근 한미일 정상, 가치동맹 강화
상품 공급망 연계 가치사슬 필수
3국의 비교우위 분야 훼손 안 돼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례적으로 빠른 경제성장에 대해 세계은행이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명명한 때가 1993년이었다. 물론 1970년대부터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의 고성장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한국과 대만, 홍콩과 싱가포르를 묶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부른 것이 그것이다. 네 마리 용의 성장은 당시로서는 정말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일례로 1990년 아시아 네 마리 용의 제조업 수출액은 개발도상국 전체의 61.5%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이에 따라 수출주도적 공업화가 저개발국의 성장 모델로 제시되면서 많은 후발국이 네 마리 용을 뒤따라 경제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개발도상국 제조업 수출점유율 61.5%라는 압도적인 숫자가 시사하듯이, 수출주도적 공업화는 모든 나라가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아주 특별한 조건 아래에서 가능했던 예외적인 성취에 가까운 것이었다.


네 마리 용의 고성장은 이들 나라와 일본 그리고 미국을 연결하는 3각 순환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들 국가는 일본에서 부품과 기술을 도입해 국내의 노동력과 결합하여 물건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상품 순환의 틀 속에서 성장하였다. 3각 순환이 가능하였던 것은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관대한 시장 개방 그리고 식민지 시기에 형성되어 있었던 일본경제에 대한 밀접한 의존이었다.

미국과 소련 간의 체제 대립을 핵심으로 하는 냉전의 틀 속에서 성장하였던 네 마리 용은 1990년대 초에 성장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무렵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미국 주도의 일극 중심이 강화되면서 세계화의 사조가 급속히 기존의 질서를 대체하였다. 이 세계화의 우산 속에서 새롭게 성장의 엔진을 마련한 나라가 중국이었고, 중국의 고도성장은 냉전 와해 이후 흔들리는 3각 순환으로 고전하던 동아시아의 신흥 공업국에 중요한 탈출구가 되었다.

1992년 중국과 수교를 하였던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의 고도성장이 아니었다면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과의 무역액은 미국과 일본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이것은 한미일 3각 순환이 한중 순환으로 대체되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자본재와 중간재가 중국으로 들어가고, 중국의 소비재와 중간재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상품 순환이 만들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과 중국의 마찰이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일정 정도 유연성을 보이고자 하였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미국과 일본의 교역 규모를 크게 앞질렀던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올 들어 변곡점을 그리고 있다. 수입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일본을 합한 규모를 앞지르고 있지만, 수출에서는 근소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합계가 중국보다 많아지고 있다. 중국과의 총 교역 규모와 미국과 일본을 합한 총 교역 규모가 거의 같아지는 전환기에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지난 18일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미국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한미일이 동시적으로 참여하는 안보 블록과 경제협력 틀을 구축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였던 이른바 가치동맹을 구축하기로 한 것으로, 이로써 향후 동북아에서는 이념에 따른 편 가르기가 더욱 명확해지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가치동맹이 지속성을 갖고 탄력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사슬이 수반되어야 한다. 상품 공급망의 연계를 의미하는 가치사슬이야말로 국가 간 관계를 가장 공고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묶어 주는 힘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실은 안보동맹이 핵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이 나열되었던 것도 그러한 인식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치동맹을 뒷받침할 가치사슬이 실제 어느 정도 뒷받침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과의 대립과 코로나를 겪으면서 제조업 공동화의 한계를 절감한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그리고 전기자동차까지 미국 내에 두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와 배터리는 한국이 비교우위를 갖는 상품이다. 미국은 지식서비스와 플랫폼경제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소재와 부품의 경쟁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러한 각국의 우위 상품들을 훼손하거나 한 나라가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각 나라의 영역을 인정하는 3국 간 협력적 순환이 만들어질 때 가치동맹도 완성될 수 있다. 냉전 시대의 3각 순환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북아 신냉전의 최전선에 놓이게 된 국가의 가치사슬에는 더 관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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