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병수발 들던 아들, 둔기로 머리 내려쳐…‘집유’ 감형, 왜?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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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부터 식사부터 대소변 등 수발
“밥 달라” 격분해 둔기로 6차례 가격
존속살해미수→특수상해 혐의 적용
“살해 의도 있었다면 보다 큰 상해 입혀”

부산고등법원. 부산일보 DB 부산고등법원. 부산일보 DB

거동이 불편한 60대 아버지를 병수발하던 30대 아들이 둔기로 아버지의 머리를 6차례 내려쳐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로 대폭 감형됐다. 거구의 피고인이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진정으로 살해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는 이유에서다.

부산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박준용)는 10일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은 A(36) 씨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존속살해미수가 아닌 특수상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올해 1월 31일 오전 8시 15분께 부산 영도구의 주거지에서 자신의 아버지인 B(68) 씨의 뒤통수를 길이 24cm의 둔기로 6차례 내려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A 씨를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했고, 1심은 이를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A 씨는 2년 전부터 고관절 골절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와 둘이서 살며 식사를 준비하고 대소변을 처리하는 등 병수발을 도맡았다. A 씨는 2016년쯤 망상성 장애, 편집 조현병 등을 진단 받았고, 아버지 병수발로 인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이를 키워가게 됐다.

그러던 중 아버지에게 3일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주지 않자 B 씨가 “밥 좀 주라. 하루 한 끼 주는 것도 안주냐”며 범행에 사용된 둔기로 밥통을 두드렸다. 이에 격분한 A 씨는 “죽어버려라”며 B 씨를 밀쳐 넘어뜨린 뒤 둔기로 내려치는 범행을 저질렀다. B 씨는 전치 3주의 두피 열상 등을 입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의 범행을 1심과 다르게 봤다. 100kg 안팎으로 거구인 피고인이 거동조차 어려운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머리가 2cm가량 찢어지는 상처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범행 전 3일간 밥을 차려주지는 않았어도 컵라면을 사다 주는 등의 행동을 비춰볼 때 진정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범행 전후의 객관적 사정에 비춰보면 A 씨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며 집행유예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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