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동행… 차분해진 프리즈, 다양성 키운 키아프
2023 키아프 서울·프리즈 서울 공동 개최
지난해와 같은 극단적 ‘쏠림’ 현상은 없어
“프리즈의 영향으로 키아프가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6일 2023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개막했다. 프리즈 서울은 9일 막을 내렸고, 키아프 서울은 10일까지 진행됐다. 12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한 2023 프리즈 서울은 지난해보다는 차분한 분위기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에 나타난 ‘프리즈 쏠림’ 현상이 올해는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키아프에 참여한 부산의 한 갤러리 관계자는 “작년은 메이저 페어가 한국에 처음 왔다는 점에서 완전히 흥분 상태였고, VIP도 모두 프리즈로 몰려갔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고 했다.
프리즈, 지난해보다 볼거리 줄어
6일 77억 쿠사마 야요이 그림 등
지난해와 비슷한 판매 성적 기대
키아프 “전반적으로 수준 높아져”
한국 중진 작가들 작품 소개 늘어
“글로벌한 작가 키울 환경 조성을”
이은화 미술평론가는 “올해 프리즈 서울의 경우 대형 메이저 화랑들이 볼거리를 줄인 것 같다”며 “대형 화랑들이 전반적으로 힘을 빼고, 갤러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미술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선 점과 지난해 페어를 통해 한국 미술시장을 분석하고 시장에 맞춰 작품을 선정한 것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올해 프리즈 서울이 ‘프리즈 특유의 실험성은 사라지고 상업성만 짙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7일 코엑스를 찾은 프리즈의 사이먼 폭스 최고경영자는 “갤러리마다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시장에 어울리는 작품을 가지고 나온다”면서 “큰 뉴스가 되는 헤드라인 작품뿐 아니라 수천 개의 작품이 와 있고 가격 부분에서 보자면 지난해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는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 참여한 로빌란트&보에나 갤러리, 스티븐 옹핀 파인 아트 갤러리 등에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영국 갤러리 로빌란트&보에나는 제프 쿤스의 조각 ‘게이징 볼’, 데미안 허스트의 ‘생명의 나무’를 비롯해 오귀스트 르느와르, 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안토니오 카날 등의 작품을 전시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초판본 등 초판·희귀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피터 해링턴 부스도 눈길을 끌었다.
프리즈 서울은 행사 첫날인 6일부터 유명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판매 소식을 전했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는 쿠사마 야요이의 그림 ‘붉은 신의 호박’을 약 77억 원에 판매했다. 하우저앤워스는 라시드 존슨의 작품을 약 13억 원에, 국제갤러리는 박서보 작가의 작품을 약 6억 5000만 원에 판매했다.
2023 키아프 서울은 대체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과도한 ‘프리즈 쏠림’을 경험한 일부 갤러리의 경우 올해는 부스 규모를 줄여서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맥화랑의 장영호 대표는 “올해 키아프에서는 실구매를 위해 방문한 외국인 컬렉터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며 “구매 결정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트바젤 홍콩과 같은 느낌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맥화랑은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한국 작가의 작품을 홍콩, 대만, 일본, 영국, 미국에서 온 컬렉터에게 판매했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 대해서는 예년에 비해 수준이 더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기획자, 평론가 등 미술 관계자들은 지난해 ‘프리즈 쏠림’을 경험한 한국 갤러리들이 이대로는 시장에서 밀릴 수 있다는 생각에 작품의 다양성 추구, 작가 발굴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갤러리현대의 라이언 갠더 특별전처럼 갤러리 자체의 기획이나 미디어아트 특별전, 화랑이 발굴한 작가 20인을 집중 소개하는 키아프 서울 하이라이트 같은 아트페어 특별전이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올해 프리즈와 키아프에서는 실험미술 등 한국의 원로·중견 작가의 작품이 조명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프리즈 마스터스에 참가한 가나아트는 윤명로 작가의 1970년대 ‘크랙’ 연작과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김구림 작가의 작품을 출품했다. 학고재 부스에서는 고려인 화가 변월룡의 작품이 전시됐고, 우손갤러리는 최병소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10일 프리즈 서울이 발표한 행사 결산 자료에 따르면 학고재 갤러리는 변월룡과 하인두의 작품의 각각 1억 원에 판매했다.
해외 갤러리가 한국 작가 작품을 들고 나온 것도 인상적이었다. 키아프에 참여한 파리 바지우 갤러리는 이응노 작가, 뉴욕의 미주마&킵스 갤러리는 서용선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키아프에 19번 째로 참석한 프랑크푸르트의 디 갤러리는 추상화가 김두례의 작품을 선보였다.
공공미술관 출신의 한 기획자는 “최근 MZ세대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젊은 층에 인기를 끌던 스타 작가의 작품이 줄고, 중진 작가 이상의 작품이 상대적으로 늘어났다”며 “국내 미술관이나 대형 갤러리에서 한국 실험미술이 주목을 받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시장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외 갤러리가 한국의 기존 컬렉터 층과의 연결 전략을 세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 미술계 인사는 “한국이라서가 아니라 글로벌한 작가라서 선택하는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한 한국 작가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고 말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