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오모테나시’를 기다리며
윤 정부, 관계 회복 통 큰 결단
부산-일본 뱃길도 훈풍 불어
미중 관계 ‘거짓 서사’ 교훈 삼아
상호이익 위한 방법 고민할 때
일본의 손님맞이 용어 중에 ‘오모테나시’라는 게 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섬겨서 감동할 수 있도록 접대한다는 의미다. 일본을 이웃처럼 다니며 일본 사람들을 만난 필자도 오모테나시를 많이 받았지만 최근 수년 동안에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인이 오모테나시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이제는 고인이 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두 번째 총리 취임과 우경화, 그리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이 맞물려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어긋나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설치 등이 겹치면서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두 나라 정치인들은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로 가져가면서 그 간극을 더 벌여 놓았다. 일본은 ‘혐한’의 불쏘시개로, 한국은 ‘죽창가’로 맞불을 놓았다.
한일관계는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을 콕 찍어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수출 규제로 나서면서 외교 전쟁이 경제 분야로 옮겨붙었다. 양국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수교 이후 첫 인적 교류 중단을 맞았다. 사실상 단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한일관계에서 정치가 경제로 전선을 확대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동안에도 다양한 의제로 정치적 갈등이 있었지만 경제 문제는 예외적으로 처리했다. 그만큼 두 나라 경제는 상호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 영역으로 유입된 역사는 ‘반일’과 ‘혐한’이라는 폭탄을 터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양국 정치가 극단으로 내달리면서 양국 경제인들의 외침은 공허해졌다. 아무리 예민한 기폭제라도 안전핀만 제대로 꽂혀 있으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가 가장 예민한 시점에 방호복도 입지 않고 안전핀을 다시 꽂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정치적 손실을 각오하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는 용기였다. 다행히 그의 통 큰 결단에 일본이 서서히 화답하고 있다. 지난 7일 서울에서는 무려 7년 만에 한일 관세청장 회의가 열렸다. 앞서 지난 6월에는 한일 재무장관 회담이 개최됐고, 그 후속 조치로 한일 통화 스와프 복원, 외평채 발행 등의 결실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일본 뱃길에도 훈풍이 불었다. 코로나19 종료로 두 나라 여객선 운항이 순차적으로 재개됐고 여객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 항만 분야 고위 공무원의 부산 예방도 주목할 만하다. 마루야마 준야 일본 오사카 항만국장은 지난 7일 팬스타드림호를 타고 부산에 왔다. 항만 관련 공무원들을 대동한 그는 부산항과 평택항을 둘러보고 귀국했다. 일본 고위 공무원이 항공이 아니라 상대국 선박을 이용해서 부산을 찾았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는 만찬에서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격의 없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장면을 보면서 새로운 미래를 서둘러 설계하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산과 부산항의 성장에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특히 북항에 새로 지어진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을 직접 이용하면서 오사카의 더딘 변화와 비교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인상평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부산의 경쟁력을 해양에서 찾아야 한다는 확신이 다시 든 것은 분명하다. 윤 대통령의 결단이 얼어붙은 한일관계를 해빙시킨 것은 맞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에 따른 수산물 안전 문제는 정치와 경제, 과학의 지혜를 모두 모아서 함께 풀어야 한다. 그래서 더 ‘솔직한’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 정치적 입장보다 과학적 지혜에서 찾아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달 초 국내에도 출간된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의 신간 〈우발적 충돌〉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치 교수는 책에서 ‘거짓 서사’란 용어를 언급했는데, 미중 관계에 대한 왜곡된 정치 논리를 비판했다. 즉, 거짓임을 애초부터 잘 알면서도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정한 서사라는 의미로 ‘거짓 서사’를 끌어들였다. 미국은 중국 때문에 무역적자가 증가하고 자국민 일자리를 뺏겼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중국은 미국이 자국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논리만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정치 실패에 따른 자국민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런 거짓 서사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양국 갈등이 고조될 때 어떤 피해가 나타나는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리고 있다. 한일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국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면 누가 이익을 보는지, 쉽게 폭발할 수 있는 양국 감정선의 안전핀을 누가 뽑으려 하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존중과 이해가 절실하다. 오모테나시한 그들의 환대가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김현겸 팬스타 그룹 회장·세계해양포럼 기획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