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영감] 이질적인 것투성이, 캔버스 위 별것이 되는 일상
[예술 영감] 전혜원 작가
기억 저편 숨겨진 모습 끌어내
쌍둥이 동생과 함께 그림 등장도
“고기 덩어리·사과 등 낯선 조합”
“부분의 아름다움에 관심 가져”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 작품화
낯설다.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화가 전혜원의 그림 속 세상이 궁금했다.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 위치한 전 작가의 작업실을 두 차례에 걸쳐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 그리고 둘
“조용한 성격이라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전혜원 작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주제를 정해 그림을 그리고, 작품이 벽에 걸리는 것도 즐거웠다. 2002년 부산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1년 뒤 부산시립미술관의 청년 작가 기획전인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에 참여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뭘 그릴까 고민했어요. 사람에 대해 특히 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목마’(2000)를 타거나 ‘공원’(2003)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린 시절 자신이 작품에 들어갔다. “지나간 시절이 풍성하고 완벽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찍고 쌍둥이 동생의 사진을 찍었다. “솔메이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다 아니까요.” 그림 속 동생은 작가 자신을 대변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둘이 있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일까. 전 작가 그림에는 같은 모습 또는 비슷한 모습의 두 사람이 종종 등장한다. “둘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보면서 자랐으니까요. 그래서 유년 시절을 그리면 쌍으로 그리는 것이 자연스러웠죠.” 전 작가의 쌍둥이 동생도 그림을 잘 그렸다. 같이 미술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전공 선택이 달랐다.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생은 전 작가의 작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응원군이다. “경험치가 같아서 그런지 동생은 그림 속 상황을 ‘어, 그거네’하고 바로 알아봐요.”
기억의 저편에서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끌어내는 작업을 하는 작가. 바깥에서 보는 전혜원은 얌전한 ‘범생이’였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알았어요. 나는 머리 속으로 폭발적인 공상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생긴 것과 생각의 경계가 다르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전 작가는 이름 붙여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남들이 나를 보고 고정시켜 표현하는 단어가 실제의 나와 다를 때가 많다. 전 작가는 그렇게 보여지는 것과 이루어지는 상태의 다름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언어 분화가 덜 되어서 몇 가지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잊고 지내는 것 같아요. 이름 붙여지지 않는 것과 이름 붙여진 것. 그 사이에서 수시로 변하고 있는 것들이 제 이야기로 나오는 것 같아요.”
■경계 그리고 부분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것이 모호하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전 작가는 경계가 나뉘는 것에 어색함을 느낀다고 했다. 경계를 나누지 않고 허물고 싶다는 생각은 작품에도 반영됐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린이인지 어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인물들이 그림에 나왔다. “대학원 때 동생을 모델로 그린 ‘화장한 아이’가 있어요. 잠옷을 입고 서 있는 아이의 눈을 시커멓게 칠해서 아이가 가진 복잡한 감정을 표현했죠.”
작업실에서 놓인 ‘분홍빛 인물Ⅱ-산화하는 기억’(2022)에 눈길이 갔다. 짙은 분홍색의 세 사람이 나오는 그림에서 가운데 인물은 재봉틀로 작업을 하고 있다. 전 작가는 정육점에서의 기억을 다룬 것이라고 했다. “원래는 옷 수선 집이었는데 갑자기 정육점도 같이 했어요. 어린 마음에 낯선 조합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낯선 존재에 대한 그의 반응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6~7세 무렵 이모집에 놀러간 작가는 시멘트로 된 수돗가에서 손 모양의 비누 조각을 봤다고 했다. “이모가 조각을 배워서 만든 것인데 너무 신기하고 예뻐 보였어요. 1주일 내내 쳐다 보고 만져 보고 향기도 맡았죠. 비누 조각이 여름 햇살에 만든 그림자를 보면서 부분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같은 의미에서 그는 푸줏간에 놓인 고기 덩어리도 신기했다고 전했다. 뼈와 붉은 고기, 사과, 매미 등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작가가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 냈다. 그의 작업에서 이질감은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머릿속의 기준을 살짝 벗어났을 때 사람들은 당황해요. 미묘한 부분을 건드리면 당황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무섭다고 말해요. 친숙하지 않은 것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일상은 그렇게 이질적인 것투성이인데 말이죠.”
전 작가의 그림에서는 종종 매끈한 조각의 이미지가 보인다. 조각 같은 인물 그리기는 중국 레지던시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했다. 조각상처럼 잘라낸 인물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전 작가는 실제 흙으로 조각을 만든 경험도 있다고 했다.
인물의 눈이 생략되거나 구슬로 대체된 그림도 있다. “필요한 것만 그리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것을 생략하는 이유는 ‘이미 건너와 버린 기억, 이미 사라진 공간을 정확하게 그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해서 였죠. 그것보다는 그 때의 감정과 행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전 작가는 당장 전시 계획은 없지만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작가의 작업 방식에 있어서도 경계 허물기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마지막으로 ‘전혜원의 영감’에 대해 질문했다.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어차피 별것 아닌 일상이었으니까요. 별것 아닌 것을 그리다 보면 나에게 별것이 되는 순간이 오거든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