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불꽃 튀는 증인 신문
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박진감 넘치고, 순발력 필요한 시간
히든카드로 판세 뒤집고, 진실 파헤쳐
검찰·변호인 사전 면담 기회 보장
회유 등 오해 우려로 포기도 잦아
피해자, 모욕적 질문에 상처받기도
적정선 유지하면서 진실 밝혀야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이 선서문을 낭독하는 순간 법정의 공기는 무거워진다. 변호사 업무 중 가장 긴장되고 순발력을 요하며, 박진감이 넘치는 순간은 상대방이 신청한 증인을 반대 신문할 때이다. 증인이 예측할 수 없는 질문을 준비하고 히든카드로 숨겨 둔 증거를 제시하며 증인의 허를 찔러 판세를 뒤집어야만 한다. 상대한테 유리한 진술을 해 왔던 증인을 법정에 세워, 증인석에서 거짓을 증언했을 때, ‘위증죄’로 처벌될 수 있는 위험 부담을 안겨 주고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단 몇 분 만에 끝나는 변론 절차와 달리 증인 신문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증인의 출석을 담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에, 법원에서는 증인 신청을 받아 주는 것에 소극적이다. 특히 변호인이 검사가 제출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부동의 하여, 다수의 증인 신문을 진행해야 할 때엔 재판부에서는 ‘정말로 반대 신문이 필요하냐’라고 싫은 내색을 드러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정치인들이나 고위직 관료의 형사 사건에서 증인이 수십 명 되고, 수년간 재판을 이어 가는 상황을 보면, 딴 세상 이야기 같기도 하다. 피고인에 관한 공소 사실을 입증할 만한 CCTV 영상, 사진, 메시지 등 직접적인 물증 없이 정황 증거 및 그에 부합하는 진술에 주로 의존하여 기소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는 검사와 변호인 간에 불꽃 튀는 증인 신문이 진행된다. 뇌물죄 사건에서 수사기관에서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자의 진술이 법정에서 번복될 경우 검사와 변호인 간에는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진다.
수사 단계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 자들이 법정에서 선서를 하고 나서는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런 경우, 검찰은 증인과 피고인이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심을 품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 달라고 부탁받았나요. 최근에 피고인이나 변호인과 만난 적 있나요” 등의 질문을 하고는 피고인과 증인의 통신 내역을 조회하고, 통화 내역을 두고서 피고인과 사전에 말을 맞춘 것이라고 반박한다. 애당초 증인의 말 한마디로 뒤집힐 사건이었으면 기소하지 말았어야 마땅하다. 형사소송법은 검사나 변호인이 증인을 사전에 만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가끔 의뢰인이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면, 사전에 증인을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들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진실을 알아야 변론에 더 큰 힘을 실을 수 있고, 의뢰인이 혹여나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면 설득해서 변론 방향을 바꿀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호인이 재판 전에 증인을 만난 후 증인이 진술을 번복하여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증인을 회유했다고 오해를 사기에 변호인으로서는 매우 조심스럽고 차라리 사전 면담을 포기하는 길을 택한다. 반면, 검찰사건사무규칙은 검사가 증인을 미리 만나 신문을 준비할 수 있다고 규정화 되어 있어서, 예전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에서 뇌물 공여자를 검찰이 재판 전 두 차례 면담을 한 것을 두고, 대법원은 검사가 증인 신문 전에 증인을 소환해 면담했다면 회유나 압박 등으로 증인의 법정 진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검사가 증명하지 못하면 증인의 법정 진술은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공판에 앞서 증인을 소환·면담함으로써 증언 내용에 영향을 주는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대법원이 검사든 피고인이든 공평하게 증인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듯이, 검찰이 수차례 조사한 참고인에 대한 증인 신문을 하기 전에, 증인에 대한 접근 기회는 양측에게 동일하게 주어져야 마땅하고, 그 만남 자체에 의혹을 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형사 사건에서는 대부분 해당 사건의 피해자가 증인석에 서는 경우가 많다. 범죄 피해자로서, 낯선 법정에서 판사, 검사, 그리고 방청객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기억해 내서 증언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죄를 다투는 변호인으로서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피해자에게 예리한 질문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반대 신문을 할 때, 지나치게 피해자를 몰아세우거나 모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이는 자칫 피고인에게도 불리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꽃 튀는 증인 신문을 긴 시간 진행하고 나면 진이 빠지지만, 그만큼 변호사 업무의 생동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의뢰인을 믿고 하는 나의 주장이 진실에 가깝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혹여나 모를 ‘진짜 피해자’에게 나의 질문이 상처가 되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재판에 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