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5년…직장인 10명 중 6명 민원인 갑질 보호 못받아
“공공기관에서 주차장 관리를 하고 있는데 주차금지구역에 주차한 사람들에게 차를 빼달라고 하면 대부분 소리를 지르거나 폭언을 하면서 화를 냅니다. 얼마 전 주차금지구역 차량을 빼달라고 했더니 당사자가 제 민원을 올렸고 기관에서는 민원을 이유로 근무 평점에 불이익을 줬습니다.”
민원인 갑질로부터 고객 응대 노동자를 보호하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직장인들이 일터에서 겪는 고통은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은 회사가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철저한 관리 감독과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일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4~11일 직장인 1000명에게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 58.8%는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이후에도 회사가 민원인 갑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회사가 업무와 관련해 고객 등 제3자 폭언 등으로부터 노동자를 잘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7.5%가 '그렇지 않은 편이다', 11.3%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직장인 10명 중 6명은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셈이다.
직급별로 민원인 갑질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사원, 중간관리자 등 일선에서 일하는 실무자의 경우 민원인 갑질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80% 이상 나왔지만, 상위 관리자는 66.7%만이 민원인 갑질이 심각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무자 10명 중 4명(38.3%)은 민원인 갑질이 ‘매우 심각하다’고 답해 상위 관리자(8.3%)의 약 5배에 달했다. 상위 관리자가 민원인 갑질에 대해 실무자를 보호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심각성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18년 10월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고객 응대 노동자의 건강장해를 막기 위해 사업주가 음성 안내, 업무 중단·전환 등 예방 조치를 하도록 규정했다. 사업주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고 노동자가 보호 조치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직장인은 전체의 10명 중 3명(29.2%)에 달했다.
직장갑질119 권호현 변호사는 “누구의 월급에도 ‘욕값’은 들어 있지 않다”며 “회사는 민원인 갑질을 당한 직원에게 휴식을 주고 상담·소송지원 등 법에 따른 적절한 보호 조치를 해야 하고 어떻게 보호해줄지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