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전쟁 피로감’ 감지… EU는 “러 침공 맞서 더 단결”
미 예산안서 ‘우크라 예산’ 빠져
공화당 “미국 국경 문제 더 급해”
EU 외교장관들 키이우 첫 회의
내년 7조 원대 우크라 지원 추진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 의회가 우크라이나 지원 항목을 뺀 임시 예산안을 처리하는 등 전쟁 피로감이 감지되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방의 단결을 호소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첫 회의를 연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도 계속된 지원 의사를 밝히며 전쟁 피로감 불식에 나섰다.
2일(현지 시간) AFP,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키이우에서 열린 EU 외교장관 회의를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의 승리는 직접적으로 우리의 협력에 달려 있다”며 “더 강력하고 원칙적인 조처를 함께 시행할수록 더 빨리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러시아는 물론 러시아에 공격용 드론을 제공하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확대해야 한다고 하는 등 전쟁 종식을 위해 필요한 조처를 요청했다. EU 외교장관들이 EU 국경 밖에서 회의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이번 회의는 미국 정치권이 ‘셧다운’(일시적 업무 중지) 사태를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 항목을 뺀 임시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서방의 전쟁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 속에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EU가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와 공동회의를 연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명확한 약속으로 이해돼야 한다”며 “EU 외교장관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내년 최대 50억 유로(약 7조 1200억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를 제안했으며, 연내 EU 내에서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쿨레바 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동맹 간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며 “우리가 그들에게 놀아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봉쇄한 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EU의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우크라이나 이전을 위한 법적 작업을 서두르는 것이 EU와 우크라이나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정치권이 지난달 30일 셧다운 사태를 피하기 위해 가까스로 임시예산안을 처리하면서 공화당 반대가 많은 우크라이나 지원 항목을 빼 내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셧다운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일단 이 임시예산안에 서명하면서도 공화당에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되살릴 것을 촉구했다. 반면 공화당 강경파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우크라이나보다 미국 국경 문제가 우선순위라고 밝히고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규모를 미국 국경 지원과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EU 외교장관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쿨레바 장관은 미국 예산안 처리에 대해 “우리는 미국의 지지가 무너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위기가 단지 우크라이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도 한목소리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단결 의지를 강조했다.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번 회의는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단호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는 러시아가 우리의 피로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