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애 전체를 통해 유쾌하게 끝까지 정진하면 돼요” [인터뷰]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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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실험미술 1세대 이건용 화백
7월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개인전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 현지서 호응
13~14일 구겐하임미술관서 다시 진행

부친 책 보며 철학 공부·해외 경향 습득
현상학에 매료… ‘신체항’ 등 작품 선봬
“자연과 인간 세계의 조화 추구했어요”

이건용 화백이 지난 7월 13일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페이스갤러리 유튜브 라이브 캡처 이건용 화백이 지난 7월 13일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페이스갤러리 유튜브 라이브 캡처

“여러분들은 너무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오늘 내가 천천히 생명의 속도를 보여주겠다고 했죠. 현실적인 뉴요커들이니 중간 쯤 되면 반은 빠져나가겠지 했는데, 퍼포먼스가 끝나고 나서도 미동이 없더라고요.”

이건용 화백은 지난 7월 13일 미국 페이스갤러리 뉴욕전시장에서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아카이브 리듬’(부산일보 10월 10일자 15면 보도)을 계기로 이 화백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면과 전화로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이 걸어온 예술의 발걸음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용 화백이 2019년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그림을 뒤로 그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용 화백이 2019년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그림을 뒤로 그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페이스갤러리 마크 글림처 회장이 ‘이건용 화실’을 방문했죠.” 페이스갤러리는 뉴욕 본사를 비롯 런던, 홍콩, 서울, 제네바, 로스앤젤레스, 도쿄에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세계적 갤러리이다. 페이스갤러리는 이 작가와 글로벌 전속계약을 맺고 지난해 홍콩 전시에 이어 올해 7월 14일부터 1달여 간 뉴욕에서 이건용 개인전을 열었다. “뉴욕 전시장 2층에서 캔버스 20호부터 300호에 이르는 신체드로잉전이 있었고, 7층에서 자료전과 종이 드로잉이 전시됐어요. 거기서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가 있었죠.”

고무판에 백묵으로 선을 긋고 발바닥으로 선을 지우고 흔적을 내면서 전진하기. 약 300명의 관람객이 그의 퍼포먼스를 지켜봤다. “어떤 사람이 눈물을 글썽이며 ‘당신 퍼포먼스를 처음 봤는데 어디에 숨어 있었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당신네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답했죠. 또 ‘달팽이 걸음’이 자기 인생 같다며 지구 생명의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퍼포먼스를 해줘서 고맙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건용 '신체드로잉 76-1'(연도 미상,성능경 촬영).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제공 이건용 '신체드로잉 76-1'(연도 미상,성능경 촬영).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제공

이 화백은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목사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장서가 만 권이었어요. 네 권씩 천장까지 쌓은 책의 기둥이 곳곳에 있었죠. 그렇게 책이 많으니 안 볼 수가 없겠죠. 초등학생 때부터 장자·노자 그런 책을 봤어요. 당시 동네마다 유학자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지나가면 물어봤죠. 꼬맹이가 유학 공부를 하니 반갑다고 ‘우리 집에 가자’하는 거예요. 따라가서 밤새 이야기 듣다가 새벽에 몰래 담을 넘어 집에 들어갔죠.”

어릴 때부터 접한 철학, 인문학은 이 화백 예술 세계의 근간이 됐다. “아버지는 새로운 잡지가 나오면 창간호부터 사셨어요. 여기에서 해외 문화예술 정보를 얻을 수 있었죠. 또 중학교 2학년때부터 프랑스, 미국, 독일 등 해외문화원을 찾아갔어요. 문화원에서 나온 책자에 서울대 교수나 평론가들의 글이 실리면 거의 달달 외웠죠.”

이 화백은 배재중학교를 다녔다. “미술 실기대회를 맨날 덕수궁으로만 가는데 짜증나는 거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그린다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죠. 당시 우리집이 홍릉이라서 새벽 5시 반에 버스 타고 청량리에 나와 전차를 타고 광화문에 내려서 학교를 갔죠. 6시 반 정도면 도착하니까 그때부터 시내에 이젤을 펴놓고 거리 풍경을 그렸어요.”

학교 미술실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2차 대전 이후의 현대미술에 대해 떠들던 이 화백은 고등학생이 된 뒤에는 각종 학회에 참석했다고 했다. “신학자 윤성범 박사가 ‘기독교의 토착화’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하는데 아버지 옷과 모자로 학생 신분을 숨기고 들어갔어요. 한창 듣고 있는데 저쪽에서 누가 나를 자꾸 보는 것 같은 거예요. 자세히 보니 우리 아버지가 오신 거였죠. 아버지가 목사니 교회 등에서 세미나가 있으면 우편으로 연락이 오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었죠. 학회 가는 날은 그냥 학교 결석하는 날인 거였죠.” 고등학생 때 국전에 입선했다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취소 될 정도로 그림 실력이 좋았던 이 화백은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에 전시된 이건용의 ‘신체항’. 오금아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에 전시된 이건용의 ‘신체항’. 오금아 기자

철학 공부를 하며 이 화백은 현상학에 매료됐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세계는 신체의 기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어요. 그 말에 힌트를 받아서 나온 것이 ‘신체항’이죠.” 땅에 뿌리 내린 나무를 지층과 함께 떠서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 놓은 이 작품은 1971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협전에서 발표됐다.

“철저한 자연의 일부를 전시장에 가져다 놓았을 때 그걸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이것도 새로운 예술인가’ 하면서 새로운 개념이 파생되게 하고 싶었죠. 일종의 개념 행위인데, 수도경비사에서 나와서 폭발물 장치를 했을지 모르니 속을 다 파헤쳐서 봐야겠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미술 교사이고 공산주의가 싫어서 월남한 집안 출신인데 왜 국가에 위해를 가하겠느냐며 몇 시간을 열정적으로 떠들었더니 철수를 하더군요.”

이 화백의 신체항은 1973년 파리비엔날레에서 재현됐다. “내가 파리에서 신체항을 하겠다고 했더니 다들 비웃었어요. 광화문 네거리 인도가 전부 흙바닥이던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나는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조금도 의심을 안했는데 당장 파리로 갈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이화여대 입구에서 학원을 할 때 였는데 옷장사하는 사장들이 모닝커피 마시는 근처 다방에 갔어요.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일장연설을 했죠. ‘내가 2년마다 열리는 국제전에 한국 대표로 뽑혔는데 비행기 티켓이 없다. 내가 가서 국위선양을 해야겠는데 여러분이 일조해 주시면 나중에 신문에 날 때 그 고마움을 이야기하겠다.’ 다들 관심이 없어 커피나 마시자 하는데 창가에 앉아 있던 한 중년 신사가 다가오더군요. 홀트양자회에서 고아들을 양부모에게 에스코트하는 일을 하면 비행기 티켓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경남도립미술관 '아카이브 리듬' 중 이건용 섹션 전시 전경. 이 전시는 실험미술 작가 이건용 화백의 작업 세계를 통해 ‘미술 아카이브’의 의미와 가능성을 질문한다. 오금아 기자 경남도립미술관 '아카이브 리듬' 중 이건용 섹션 전시 전경. 이 전시는 실험미술 작가 이건용 화백의 작업 세계를 통해 ‘미술 아카이브’의 의미와 가능성을 질문한다. 오금아 기자

이번에는 호텔 비용이 문제였다. 이 화백은 문공부를 몇 번씩 찾아가 1000불(달러)을 받아냈다. “파리에 갈 때 미술협회에서 주소 세 개를 받아갔어요. 한묵 선생, 김창열 선생 그리고 한국대사관. 현지에서 김창열 선생 자가용을 얻어 타고 시골 동네를 돌며 나무를 구했어요. 그래도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아 조르주 부다이유 파리비엔날레 총감독을 찾아가서 ‘나무를 구해주지 않으면 나는 내일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우겼죠.” 이 화백은 1979년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가할 때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해서 비행기 티켓을 구했다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기획으로 지난 5월 26일부터 7월 16일까지 서울관에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이하 한국 실험미술전)를 열었다. 지금은 김구림 작가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공동개최한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에도 작품이 등장하는 등 한국 실험미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 화백에게 ‘이건용 실험미술’의 특징을 물어봤다. “미술을 당대가 처한 사회문화적 상황과 이에 대한 논평과 대응의 산물로 보았어요. 미술의 개념을 미술 행위자의 신체와 미술 매체와의 관계 안(장소)에서 미술을 창조하고 소통하려고 했죠. 서양의 산업화 경제 구조와 자유·민주·평등의 정치사회적 현대화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정신적·예술적 측면에서는 친자연적 세계관을 최고의 이상적 미덕으로 생각해서 ‘자연과 인간 세계의 조화’를 추구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기획으로 지난 5월 26일부터 7월 16일까지 서울관에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를 열었다. 사진은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은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기획으로 지난 5월 26일부터 7월 16일까지 서울관에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를 열었다. 사진은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 화백은 9월 초부터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실험미술전에서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다시 선보인다. 오는 13일과 14일은 이건용, 11월에는 성능경, 12월에는 김구림 화백의 퍼포먼스가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미술(예술)은 무엇인가라는, 미술의 본질을 묻는 질문을 미술 매체와 창작자의 실제적인 신체와의 관계 안에서 현상적으로 새롭게 드러내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미술과 대중과의 새로운 소통의 장을 열었다고 받아들일 것으로 봅니다.”

실험미술 1세대 작가인 이 화백에게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들려 달라고 했다.

“오늘날 미술은 단순히 미술 애호가나 수집가, 향유자의 관조나 미학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시대가 처한 사회문화적 현실 상황과 그에대한 논평과 대응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선진국에 대한 지나친 열등감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은 자신을 더욱 풍부하게 더욱 오래도록 넓혀가는데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세상적 성공과 실패에 주눅들지 말고 자신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유쾌하게 끝까지 정진하는 것이 전부이지, 그 외의 것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남과 비교하는 자 자신의 자화상도 없이 시간낭비하는 꼴뚜기장수(business man who has gone broke)이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기획한 한국 실험미술전은 2024년 1월 7일까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진행되며, 이후에는 LA 해머미술관으로 순회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 전시는 △청년의 선언과 시대 전환 △도심 속, 1/24초의 의미 △전위의 깃발아래-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거꾸로” 전통 △‘나’와 논리의 세계:ST △청년과 지구;촌 비엔날레 등 6개 소주제로 구성된다.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 한국 실험미술 작가 29명의 대표작 약 95점과 자료 30여 점이 소개된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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