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빈대의 낯짝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요즘 프랑스가 빈대로 인해 난리다. 영화관이나 지하철에 빈대가 출몰해 사람들을 경악케 한다. 빈대 때문에 수업을 쉬는 학교도 속출하는 형편이다. 신고를 안 해서 그렇지 실상은 일반 가정에서 더 심할 것으로 짐작하는 이도 많다. 급기야 프랑스 정부가 전 부처를 모아 놓고 긴급 대책회의까지 열었다고 하니, 난리의 정도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고 봐야 하겠다. 최근에는 빈대가 파리를 넘어 영국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라 유럽 전역이 바야흐로 빈대 공포에 휩싸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우리나라에서 빈대를 실제로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DDT 같은 강력 살충제를 죽어라 뿌려댄 덕에 1970년대 이후 사실상 박멸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살면서 빈대를 제대로 한 번 보지도 못했을 요즘 젊은 세대에게 빈대는, 희한하게도,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니다. “빈대 같은 녀석!”이라거나 “빈대 붙지 마라!”라는 말이 관용구처럼 일상에서 쓰인다. 이때 빈대는 너무 궁핍해 남에게 빌붙어 살거나 해를 끼치는 존재를 일컫는다.

그래도 우리 조상들은 빈대를 너무 비루하게만 여기지는 않은 듯하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이 그렇다. 몸길이 5mm 안팎에 머리는 더 작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빈대지만 녀석에게도 낯짝은 있을 테다. 그러나 속담 속 빈대의 낯짝은 실물의 그 낯짝이 아니다. 낯짝은 곧 체면이요 체면은 염치, 즉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작고 천해서 보이는 족족 잡아 죽여야 할 미물이지만, 그런 미물도 부끄러움은 안다는 것이다. 나아가 하물며 사람인데, 어떠해야 하겠냐며 묻는 것이다.

목하 국회 인사청문회나 국정감사 등 정치권에서 보이는 인사들의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벌여 놓고도 궤변으로 일관하고,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도 책임은 외면하고, 그러면서 해명이라고 내놓는 게 기만이나 조롱으로 느껴지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이 염치를 잃으면 빈대보다 하등에 나을 게 없다. 특히 그가 정치인 같은 사회 지도층이라면 사회 자체를 위기로 빠뜨린다. 〈관자(管子)〉에서는 “예의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고 염치가 사라지면 나라는 멸망한다”고 했다. 부끄러움이 없으니 나라야 망하든 말든 못할 짓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원래 정치는 염치를 모르는 이들이 하는 것”이라는 말이 세간에 통용될까. 빈대 낯짝만큼의 염치도 없는 인사들이라니! 부끄러워 자식한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