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예술, 바다를 생각하다
오금아 문화부 에디터
2023 바다미술제 일광서 개막
환경 압도하는 대형 작품 대신
바다와 교감·대안적 관계 제시
새 가능성 보여주는 예술의 힘
눈앞에 부산의 밤바다가 펼쳐졌다. 멀리 수평선에 오징어잡이 어선의 불빛이 그려진 김종학의 ‘바다’ 그림이다. 옆으로는 요동치는 파도를 형상화한 강요배의 그림이 있고, 짙푸른 물속으로 침잠하는 유혜숙의 작품이 있다.
‘파란, 일으키다’는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현대미술 기획전이다. 동시대 미술가 10인의 해양적 시선이 담긴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새로운 파란이 일어나길 바라는 의미가 담긴 전시 제목 ‘양기파(揚基波)’는 굴원의 ‘어부사’에서 가져왔다. 바다사자들이 힘겹게 헤엄치는 인간을 지켜보는 방정아의 ‘웃기는 경계선’을 보며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생각했다. 반짝이는 가짜 파도 속을 헤엄치는 기계 생물을 표현한 허병찬의 작품을 보며 ‘보고 싶지 않은’ 미래의 어느 장면을 떠올렸다.
많은 예술 작품 속에 바다가 있다. 바다는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줬다. 작품 속 바다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다. 작가가 표현하는 대상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바다 자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찬란하게 빛나고, 때로는 거칠고 무섭다. 작가들이 바다를 표현한 색상과 이미지의 숫자만큼 예술 속 바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2023 바다미술제가 일광해수욕장에서 14일 막을 올렸다. 바다미술제는 부산의 자연환경이 반영된 대표적인 해양미술축제로 일광 지역에서 열리는 것은 2021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개막에 앞서 찾아간 바다미술제 현장에서 받은 첫인상은 대형 작품이 적다는 것이었다. 답은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는 “이번 미술제는 바다와 환경을 압도하거나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작품보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백사장이나 마을 곳곳을 여행하며 작품과 전시 주제를 고찰하도록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바다미술제의 주제는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이다. ‘깜빡인다’는 것에는 바다가 가진 아름다움과 각종 개발로 위기에 처한 해안의 유약함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다는 가능성을 품은 거대한 산업으로 인식된다. 해운, 크루즈 관광, 풍력 발전, 심해 채굴, 남획, 핵실험, 산업폐기물 투기, 플라스틱 오염…. 인간에 의해 바다의 건강과 해양 생물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바다가 넓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인간 활동이 바다에 구체적으로 어떤 위해를 가하고 있는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 전시감독은 바다미술제를 통해 인간 활동이 바다와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에게 바다는 어떤 존재이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묻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착취가 아닌 돌봄과 협력, 회복을 토대로 바다와 해양생태계를 위한 대안적 관계를 고민해 보기를 희망했다.
그리스 섬 출신인 전시감독은 전시 참여 작가를 모두 해안 도시 출신의, 바다와의 교감 또는 바다와의 관계 형성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로 선정했다. 전시작 선정과 설치에 있어서도 일광 해변이 위치한 지역 사회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형성할까를 생각했다. 또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작품은 100% 부산 현지에서 제작하도록 했으며, 작품 재료도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을 사용해 전시 폐기물 배출을 최소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바다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해수면 상승에 대한 짧은 시가 담긴 표지판, 숨 쉬는 그네, 파도가 연주하는 대나무 오케스트라, 인공 산호초로 구성된 수생정원, 해초를 이용한 흙집 같은 설치 작품과 일광바다와 일광천이 만나는 기수역을 연구한 결과물, 영상과 미디어 작업 등을 돌아봤다. 할매·할배신당 창고와 옛 일광교회의 전시까지 다 돌아본 뒤 몇몇이 이야기를 나눴다. ‘메시지가 살아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천교 근처 일광천 안에 ‘맹그로브 시리즈’가 설치되어 있다. 레나타 파도반 작가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있는 맹그로브 숲은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처인 동시에, 탄소를 흡수하고 해안 침식과 쓰나미 피해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맹그로브는 늪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팔 같은 것을 뻗어서 전체적 구조나 균형을 잡는다. 붉은색의 선 구조물이 모여 만들어진 가상의 맹그로브를 보며 연대의 힘, 복잡하게 연결된 분리되지 않은 몸을 느꼈다.
예술로 당장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생각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 수는 있다. “예술에는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하고, 관념을 바꾸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파파디미트리우 전시감독의 이야기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