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형사공탁제도, 피해자 배려한 제도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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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피해자 합의 없는 ‘기습 공탁’ 횡행
형량 감형 뒤 ‘먹튀’, 허점 수두룩
이의 의견 시간 보장 등 개정안 발의

법원도 양형조사제도 적극 활용해
합의 노력 여부·공탁 경위 살펴야
국가기관, 공탁금 수령 배려 절실

얼마 전 살인사건의 피고인이 항소심 재판 선고 직전에 피해자 측을 상대로 1억 5000만 원을 공탁한 뒤 징역 20년에서 16년으로 형량이 감형되자, 선고 6일 후에 공탁금을 전액 되찾아가 버린 사건이 이슈가 되었다. 유가족들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공탁을 감안하여 항소심에서 감형된 형량은 그대로 확정이 되었다. ‘먹튀 공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공탁이 되었다는 이유로 감형이 되고, 공탁금을 다시 회수까지 하는 등 제도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공탁금을 다시 찾아갈 생각을 한 건지 그 생각이 참 기발하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의 경우, 양형 판단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피해자와 합의 여부다. 그러나 여러 사유로 합의가 여의치 않을 때, 금전적으로나마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는 사정을 보여 주기 위해 활용되는 것이 형사공탁제도다.

하지만, 작년 12월부터 형사공탁특례제도가 도입되면서 또 다른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기존에는 민법상 변제공탁을 원칙으로 하여, 공탁을 위해서는 피해자의 성명이나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 사항을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알 수 없을 경우나, 피해자가 공탁을 위한 인적 사항 제공을 거부할 경우 사실상 공탁제도를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피고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려고 하거나,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하는 등 2차 피해의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개선하고자 형사공탁 특례조항이 신설되었다.

이 제도 신설로 이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몰라도 형사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과 사건번호, 사건명 등을 공탁서에 기재하면 변제공탁이 가능하도록 바뀐 것이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합의가 여의치 않을 때는, 형사공탁특례제도를 이용해서 피해회복이나 변제를 통해 감형을 받기 쉬워졌고, 변호인으로서도 위 제도를 활용하여 공탁을 진행할 때, 그 절차가 수월해졌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공탁법은 형사공탁의 특례에 대하여 규정하면서, 공탁 통지는 공탁관이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탁 사실을 공고하는 방법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니, 정작 해당 사건의 피해자도 모르게 공탁이 이루어지고, 그 사실이 유리한 양형에 반영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또한 성범죄 사건 등에서 피고인이 합의를 위한 노력은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공탁을 하거나, 변론 종결일 즈음 기습 공탁을 하는 등 피해자는 그 절차에서 배제되는 문제점도 생겼다. 제도 시행 1년도 채 되지 않아 신청 건수는 9배나 증가했지만, 지급률은 신청 건수에 비해 3분의 1로 떨어졌다. 피해자가 몰라서 못 찾아거나, 기습 공탁으로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최근 공탁법 개정법률안이 발의되고 있다. 형사공탁을 해당 형사사건의 변론 종결 기일 14일 전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피해자에게 형사공탁에 대한 이의 의견을 제출할 시간을 보장하거나, 법원은 공탁관으로부터 통지를 받은 후 일주일 이내에 피공탁자 또는 그 법률대리인에게 고지하도록 하여, 피해자에게 공탁 사실을 알리고, 공탁수령 의사가 없을 경우 공탁회수동의서 등을 제출하는 방법으로 원하지 않는 공탁이 피고인의 유리한 양형에 반영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이다. 피해자를 배제한 공탁제도의 허점을 보완한 점에서 개정안을 환영한다.

다만, 피고인을 대신하여 피해자와 합의를 위해서 조율을 하다 보면, 피해자 측이 요구하는 합의 금액이 일반 사회 통념상 지나치게 과다하거나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의 경우 합의를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형사공탁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기에 피해자와의 합의 없는 공탁이라고 양형사유에서 무조건 배제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합의 노력이 없는 ‘기습 공탁’ 또는 ‘꼼수 공탁’인지 여부는 법원의 양형조사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으로 보완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양형조사를 통해 피해자 측의 합의의사 여부를 확인하고, 피고인의 합의를 위한 노력 여부나, 공탁 경위 등을 변론 절차에서 적극 확인한 후, 이를 양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행법은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위해서는 법원이나 검찰이 발급한 증명서에 의하여 동일인 확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수사기관과 법원 그리고 공탁소까지 피해자에 대한 개인정보의 비식별화 전자시스템 연계로,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는 절차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도록 국가기관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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