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공존의 바다’로 나아갈 것인가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
‘동북아해역과 산업화’ 발간
총괄편 집필 김대래 명예교수
“해금·냉전·세계화 바다 통해
한중일, 세계 3대 경제권 형성”
3국만으로 세계 3대 경제권 형성
동아시아 바다는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왔을까. 김대래 신라대 명예교수의 ‘전후 동아시아에서의 산업화’는 ‘바다’ 관점에서 동아시아 경제 변화를 거시적으로 고찰하는 글이다. 부경대 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이 최근 펴낸 <동북아해역과 산업화-항구·원조·사람>(소명출판)에 실린 한·일·대만 학자 총 13명의 13편에서 총괄하는 맨 앞의 글이다.
김 명예교수에 따르면 동아시아는 ‘해금의 바다’ ‘냉전의 바다’ ‘세계화의 바다’를 역사적으로 거쳐왔고, 바야흐로 ‘공존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해금(海禁)의 바다’는 15세기 이후 교역을 틀어막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명대(明代) 조공시스템에 근거한 것으로 동·서양의 위상 역전을 낳은 결정적 요인이었다. “해금의 바다에서 19세기 말 일본이 서구 산업혁명을 받아들여 마지막 근대화 열차에 올라탄 것은 동아시아 최대 사건”이라고 김 교수는 보고 있다. 특히 일본의 공업화는 ‘식민지 근대화론’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는 달리 역내(중국 조선 대만)에서의 생산과 무역이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다.
‘냉전의 바다’는 1950~1953년 한국전쟁으로 확립됐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최대 수혜자는 무엇보다 일본이다. 일본은 한국전쟁 덕에 패전 후 부흥의 큰 기회를 얻고,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방벽으로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가 돼 1970~1990년 ‘일본의 시대’를 구가했다. 다음 주자는 1970년대 이후 서서히 부상한 신흥공업국(NICs)인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다. 이들 ‘네 마리의 용’은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통해 부상했는데 특히 한국, 대만은 중간재나 기술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상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를 취했다. 요컨대 ‘3각 순환 구조’인데 미국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일본에 지급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 한국 경제의 순환도 다름아닌 미국과 일본 사이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고공 행진이 미국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자, 미·일 경제마찰이 빚어지고, 한국은 최대 호기를 맞는다. 일본을 누르는 엔고 압력의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한국(과 대만)은 3저(환율 금리 유가) 호황을 맞아 1987년을 정점으로 하는 유례없는 무역 황금기를 누렸다. 그것이 탈냉전 시기와 희한하게도 맞물렸다는 것이다.
‘세계화의 바다’는 1980년대 말 냉전 붕괴 이후 인류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자유무역을 구가한 시대였다고 한다. 이 시기 30여 년간에 걸쳐 일본과 네 마리 용의 상대적 침체와, 그에 대비되는 중국, 인도, 동남아 국가 등 2세대 신흥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세계사적 사건은 중국의 급성장이다. 지금 ‘세계화의 바다’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세계화로 중국과 해외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중산층을 성장시켰으나 정작 미국과 유럽에서는 새로운 일자리를 거의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아시아 3국의 산업화 역사를 단출하게 일별하면 첫 번째 일본이 부상했고, 두 번째로 한국이 떠올랐으며, 세 번째로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중·일은 1960년 세계경제 생산 비중이 9.2%에 불과했으나 2021년 25.9%로 세계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되었단다. 한·중·일 3국만으로도 북미(27.8%) 유럽(25.1%)과 함께 세계 3대 경제권이 됐다는 것이다.
과제는 명료하다. 중국이 혼자서 질주하느냐, 아니면 과연 한·중·일 3국이 새로운 ‘공존의 바다’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상대를 배제하면서 제각기 분투했던 ‘해금의 바다’ ‘냉전의 바다’ ‘세계화의 바다’에서 ‘공존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면, 동아시아가 세계에 성장 동력을 제공하면서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보편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