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신뢰에요~"가 실례라고? [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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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원들을 대동해 이동 중인 전청조 씨 모습. JTBC 방송화면 캡처 경호원들을 대동해 이동 중인 전청조 씨 모습. JTBC 방송화면 캡처
JTBC 방송화면 캡처 JTBC 방송화면 캡처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남장여성 전청조 씨의 '혼인빙자 사기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양파 껍질처럼 또 다른 논란들이 더해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소동의 당사자인 전직 국가대표 남현희 선수가 뒤늦게 피해를 호소하며 털어놓은 얘기를 두고선 일각에서는 '막장 드라마'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전개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전 씨가 같은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유튜버 A 씨에게 접근해 자신이 시가총액 130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IT그룹의 대주주라면서 나눈 카카오톡 대화가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 씨가 소위 '외국물' 좀 먹어본 티를 내려했는지 "그럼 Next time에 놀러 갈게요. Wife한테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더니 ok 했어서 물어봤어요. But your friend랑 같이 있으면 I am신뢰에요"와 같은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독특한 말투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지난 주말 사이에는 전 씨 관련 내용이 아닌 다른 사건·사고 기사에도 이를 패러디한 제목들이 넘쳐나더니,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스포츠 중계의 자막은 물론 대형 마케팅 업체의 광고 문구에도 등장하는 등 뜻밖의 '밈(meme·유행어)'으로 탄생했다. 사기사건 피해자들을 배려해 무분별한 밈 사용은 자제하자는 비판까지 나올 지경이다.


이른바 '한영혼용체'를 사용한 교수의 사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른바 '한영혼용체'를 사용한 교수의 사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예리한 눈썰미에 풍자와 해학을 좋아하는 누리꾼들이 이를 그냥 지나치기는 힘들다. 전 씨가 사용한 단어들이 막상 뉴욕에 거주하는 재벌집 자제가 쓰기에는 웬만한 어린이들도 알만한 초급 수준일뿐더러 당장 해외에 상주하며 활동하는 전문가나 영미권에서 학업을 마친 일부 교수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른바 '한영혼용체'와도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일상 대화 중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 한자식 표현을 대신해 영어를 말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쉬는 어휘를 영어로 말하고 정작 어려운 단어를 한국어로 쓰는 식이다. 심지어 대화 뒷부분인 "I am신뢰에요~"의 전후맥락을 살펴보면 '믿는다(believe)'의 '신뢰'가 아닌 '예의가 아니다(impolite·rude)'의 '실례'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외기'를 '시래기'로 착각하거나,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쓰는 '한국사람'의 실수라는 것. 여기에 맞춤법까지 바로 잡으면 '신뢰에요'는 '실례예요'로 표기되는 게 옳다.


즉 나중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상대방에게 '후광효과'를 기대하고 보여주는 허세라는 평가다. 마침 유튜브에서는 과거 학창시절을 진짜 뉴욕에서 보냈던 배우 이서진 씨가 출연한 웹예능 '이서진의 뉴욕뉴욕2' 시리즈가 최근 공개돼 평균 조회수 300만회 이상을 기록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공교롭게도 전 씨가 결혼 소식과 함께 매체에 등장해 자신을 재벌 3세라 소개하며 내세운 출신지 '미국 뉴욕'이 알고 보니 강화도에 소재한 음식점 '뉴욕뉴욕 돈가스'에서 유래된 게 아니냐는 의심과 겹치는 건 덤이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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