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장애인에겐 ‘시련버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탑승부터 하차까지 고난의 연속
전체 버스 3대 중 1대만 승차 가능
노선 중 35% 저상버스 안 다녀
바쁘다고 고정 벨트 착용 전 출발
고장난 리프트 이동권 보장 현주소

뇌병변장애인 성희철 씨가 지난달 30일 오후 부산 동래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저상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뇌병변장애인 성희철 씨가 지난달 30일 오후 부산 동래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저상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35년. 뇌병변 장애인 성희철(48) 씨가 휠체어를 타고 버스 정류장까지 다시 가는 데 걸린 시간이다. 장애로 인해 목발을 짚고 버스에 올랐던 13살 때 이후로 버스에 오른 적이 없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에게 시내버스 탑승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성 씨는 지난달 30일 오후 5시 일을 마치고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서 서면까지 가기 위해 시내버스 80번을 기다렸다. 눈앞에서 저상버스를 놓친 성 씨는 버스 3대를 보내고 겨우 35분 뒤 저상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성 씨에게 시내버스 탑승부터 하차까지 일련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보이기 위해 정류장에서 손을 높게 흔들었지만 이를 보지 못한 버스가 지나치기도 했다.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한 지 5년 만이라는 버스의 자동리프트는 작동 중 오류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버스에 겨우 올라타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출발해 휠체어가 쓰러질 뻔한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버스가 급정거하면 휠체어 밖으로 성 씨가 넘어질 수 있어 고정벨트 착용이 필수이고 의무이지만 언감생심이다. 결국 성 씨는 서면에 도착할 때까지 휠체어 옆 손잡이를 힘껏 잡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성 씨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대중교통 이용 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 권리 보장을 위해 부산지역 장애인들이 직접 시내버스에 탑승해 대중교통 실태조사에 나섰다. 부산은 휠체어 장애인들이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턱없이 부족하고 운영 실태가 열악하다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 1일 부산시 조사결과 시내버스 2517대 중 저상버스는 875대로, 도입률은 34.7% 정도다. 장애인 탑승이 가능한 시내버스는 3대 중 1대꼴에 그친 셈이다. 서울의 경우 저상버스 도입률은 71.9%로, 단순 통계수치만 비교해 봐도 부산 상황은 열악하다. 부산시는 올해 도입 예정이었던 저상버스 313대 중 129대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노선별로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부산지역 시내버스 노선 가운데 저상버스가 다니는 곳은 총 146개 중 95개(65%)에 불과하다. 산복도로 등 언덕을 지나는 21개 노선은 저상버스에 하부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저상버스가 아예 다니지 않는다. 휠체어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고 갈 수 없는 곳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이 밖에도 시간 지체 등을 이유로 고정 벨트 미착용,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없는 협소한 BRT 정류장 조성 등 휠체어 장애인들에게 부산 곳곳은 ‘이동할 수 없는 장벽’ 너머 가까이 갈 수 없는 공간이 돼버렸다.

부산시 관계자는 “저상버스를 생산하는 업체에 수요가 몰려 차량 출고가 지연된 상황이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마찬가지”라며 “부산시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 계획에 따라 지속적으로 교체에 나설 것이고, 저상버스가 다닐 수 없는 노선이 포함된 구·군에는 도로 개선 작업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상버스 탑승 불편함을 이유로 장애인들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장애인 전용 콜택시 ‘두리발’을 자주 이용하지만, 이조차도 이동권을 보장하지 못한다. 부산시 두리발은 현재 총 201대로, 법정대수(211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리발 운영을 담당하는 시설공단이 추산한 두리발 이용자는 지난해 말 기준 3만 1697명이지만 두리발 201대로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두리발 배차부터 실제 탑승까지 30분 이상 대기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부산뇌병변복지관 이주은 관장은 “부산은 버스부터 택시, 지하철까지 장애인들의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일례로 저상버스 탑승이 용이할 수 있도록 앱 개발을 통해 휠체어 장애인들의 승하차 위치 정보 제공을 하면 버스기사와 장애인 모두에게 유용할 수 있다. 양적인 개선과 함께 장애인들의 경험을 듣고, 이들의 관점에서 구체적인 맞춤형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8일 장애인들과 시민단체는 대중교통 실태조사를 토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이동권 권리 개선 촉구에 나설 예정이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