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글로벌 허브도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최세헌 경제부장
다수 장관·기업 총수 대동 이례적
지역균형발전 통한 국가 발전 역설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은 원론적
다른 지자체와의 차별성도 모호
신중·실용·현실적인 전략 세워야
지난 6일 ‘부산 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를 위해 부산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가 불발된 후 첫 부산 방문인데, 다수의 장관과 기업 총수까지 대동한 것은 전임 대통령의 사례를 봐도 낯선 풍경이었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 경제 관련 핵심 장관 6명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 7명이 윤 대통령과 동행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정무적 분석이 나오지만, 그만큼 대통령실 등 정부 차원에서 엑스포에 대한 기대가 컸고 유치전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민심 다독이기 차원에서 부산을 찾은 윤 대통령의 이른바 선물 보따리는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드는 데 정부가 앞장서겠다는 거다.
윤 대통령은 “부산을 물류와 금융, 디지털과 첨단산업의 거점도시로 명실상부 발전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면서 “우선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과 범정부 거버넌스를 신속히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 그는 “엑스포 전시장을 세울 자리(부산항 북항재개발 지역)에 투자 기업들을 많이 들어오게 해 부산을 더 발전시키겠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약속은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지론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엑스포의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엑스포를 유치하는 것 이상으로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 전체 국민에게 그보다 더 유리한 방안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연적인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또 “엑스포 유치도 부산의 글로벌 허브화와 남부권 거점화를 위한 것인 만큼 엑스포를 위해 추진한 지역 현안 사업은 그대로 더 완벽하게 진행할 것”이라며 부산의 글로벌 허브화를 위한 정책 지원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가덕신공항 조기 개항, 산업은행 부산 이전, 북항재개발 사업 등을 차질없이 추진하는 한편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가덕신공항, 산은 이전, 북항재개발 등 부산의 3대 현안이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인 걸 감안하면 이번 대통령 선물 보따리의 핵심은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이다. 그런데 과연 이 특별법이 부산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선물이 될 수 있을까.
현재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 절차를 위해 부산시는 내년 추진체계 구축, 기본구상 및 계획 수립 등을 거쳐 2025년 부처 협의 및 법안 마련, 국회 심사 및 특별법 제정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특별법의 핵심은 부산 전역을 규제 프리존으로 둬서 도시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해 싱가포르를 능가하는 글로벌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
하지만 너무 원론적이라는 지적이다.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다른 지자체와의 차별성도 모호하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부내륙특별법’, 이미 시행 중인 세종특별자치시·제주특별자치도·강원특별자치도, 내년 출범하는 전북특별자치도까지 모두 규제 완화와 지역산업 발전을 위한 조치들이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부산시민 달래기라는 명분으로 일주일만에, 급하게 이뤄진 부산 방문은 의욕만 앞섰고 선물 보따리는 공허했다. 이를 조정했을 부산시는 전략 부재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재벌 총수들과 함께한 ‘떡볶이 먹방’이 화제가 됐을 뿐이다. 산은 이전도 민주당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도 쉽게 낙관할 수 없다.
대통령이 언급한 ‘물류와 금융, 디지털과 첨단산업의 거점도시’인 부산의 산업 구조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항만과 공항, 철도의 트라이포트 전략의 경우 부산에 본사를 둔 제대로된 물류 기업 하나 없다. 금융중심지 부산도 10여 년 동안 이렇다할 성과를 거둔 게 없다. 전통적인 조선기자재·기계·자동차 부품 등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의 산업 구조는 달라진 게 없다.
글로벌 허브도시, 무엇으로 채울지 신중하고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대기업 유치가 부산 경제의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부산시의 분발이 요구된다. 부산이 어떤 산업에서 글로벌 허브도시로 우뚝설 수 있을지, 어떤 산업을 육성해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을 유치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세심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