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라져도 씨앗으로 남는다”
이창희 시인 네 번째 시집
‘어제 나는 죽었다’ 출간
죽을 고비 두 번 넘기며
눈·마음 열린 씨앗 시편들
‘양말’ ‘말뚝’ 절편들 많아
네 번째 시집 <어제 나는 죽었다>(작가마을)를 낸 이창희 시인은 1980~90년대 부산의 ‘시와 인간’ 동인이었다. ‘철주 행님은 우찌 사노’의 허철주를 비롯해 류명선 최영철 박병출 조해훈 동길산 시인 등이 그 동인이다. 이창희 시인은 큰 교통사고 등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겼다. ‘부마항쟁 가투에서/쇳덩이에 찢겨지고/여덟 바늘이나 꿰’맸던 일은 그 축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눈과 마음이 열리더란다. 시가 써지더라는 것이다. 1990년과 1995년에 시집을 내고, 2018년에 세 번째, 그리고 이번에 네 번째를 낸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의 방식으로 ‘역사로 남는 것’과 ‘기억 속에 남는 것’, 두 가지를 언급했어요. 한 가지 덧붙인다면 ‘씨앗으로 남는 것’도 자연스러운 방식일 거예요. 생물은 존재의 기억을 씨앗으로 남긴다는 것이지요.”
과연 씨앗 시편이 펼쳐진다. ‘사마귀 한 쌍/짝짓기 사랑은//짝을 살리려고/내가 죽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슴 속 씨앗 몇 알/이듬해 봄을 품었다’(‘너를 살리려고’)는 것이다. 봄을 품지만 ‘씨앗은 내일을 못 봐요/흙에 묻혀서 껍질을 깨고/새움이 돋아나서/그것이 푸른 하늘을 듣고/새봄을 찬미하는 새 소리/보게 되는 거지요’.(‘죽음이 사는 집’). 이런 것이 자연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죽음이 남기는 씨앗은 이를테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등대가 서 있다는 거’와 닮았을지 모른다.
그는 부서지는 파도에서도 씨앗을 예감한다. ‘바다는 날마다 죽는다/흔절하면서 꽃을 피운다//파도가 제 발 앞에 엎어지며/죽어가는 것을 보고/붉고 서럽게 꽃이 운다//(중략)//갯바위에 서서/일렁이는 바다를 안고/죽어 간 파도의 이름을 부른다/해당화여’. 부서지는 파도에서 꽃을, 해당화를 보다니! 이 아름다운 시의 제목은 ‘내가 죽어야 꽃이 핀다’이다. 파도는 붉고(아 붉단다) 서럽게 산산이 부서지며 꽃을 피우지만, 그 꽃도 씨앗을 맺을 것이다. 그의 씨앗 시편에서 ‘함석헌의 씨알’이 읽히기도 한다.
그는 5년 전, 30여 년 이어온 목회 활동을 조기 은퇴했다. ‘시와 인간’의 다른 동인들이 ‘인간의 길’을 걸었다면, 그는 모태신앙의 씨앗을 따라 ‘신의 길’을 걸었고, 다시 시의 길로 회귀했다. 동인들은 스스로 우스개 삼아 ‘시와 짐승’으로 부르기도 했단다. 요컨대 짐승의 길, 인간의 길, 신의 길이 있을 텐데, 우리가 정치적 압제 속에서 짐승처럼 취급받을 때, 우리는 짐승처럼 울어야 했다. 그것은 인간의 길로 나아가려는 울부짖음이었는데, 신의 길이라고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내 곁을 떠났고/숨결조차 버거워서/울며 가고 있을 때’ 그때 ‘나도 당해 봤다’ ‘그 사정 내가 안다/네 고초 나도 당해 봤다’며 찾아온 이가 ‘나의 맏형/인자(人子) 예수’, 즉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는 쉽게, 그러나 깊이 있게 읽힌다. 말과 의미를 어렵게 비틀어 잘 안 읽히는, 요즘 많은 부산 시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이상한 사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봄맛 다시듯/찔레 하고 불러본다//말문 트는 입술에/넣은 주고 싶은 저것’, 찔레처럼 상큼하게 찌를 수 있어야, 마음에 넣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시일 테다. 시집에는 양말 말뚝 등을 노래한 절편들이 있다.
그는 기장군 일광에서 독서와 글쓰기 치유센터 ‘신기료의 집’을 운영하고 있단다. 구두 수선공인 ‘나무 심는 사람 장 지오노 아버지’의 ‘신비한 혁명’에 꽂혀 그를 따라 만든 것이다. ‘광야길 가다 신발 해지고 옷이 찢어지면 꿰매야 하는 것처럼,/세상 길 가다 상하고 찢긴 마음 깁고 가오’라는 심정으로 그 집을 운영 중이다.
‘어제 나는 죽었다’란 뜻은 뭘까. ‘두렵지 않다/다석(유영모)이 그랬던 것처럼/매일 밤마다 죽고/매일 아침마다 다시 소생할 것이며/우리들의 내일은 이로써 지속될 것이다//오늘은/오~! 늘[永遠] 이다/날마다 오늘인 나는 그리하여 자유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없는 오늘이라도 상관없다. 우리는 사라져도 씨앗으로 늘~ 남을 테니까.”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