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스포츠는 덤일 뿐
이대진 스포츠부 차장
2015년 여름, 국무부 초청으로 잠깐 미국에 머물 때의 일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소도시 그린스보로의 한 야구장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이너리그 하위팀 ‘그린스보로 그래스호퍼스’의 홈 경기가 있는 날. 1회초 시작 한참 전부터 시민들은 삼삼오오 야구장으로 모여들었다. 부산 사직야구장의 절반도 채 안 되는 규모였지만 보면 볼수록 부러웠다. 경기장 안과 밖, 곳곳에 놀 거리가 즐비했다. 입구 옆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고, 좌석 없는 잔디밭 외야는 피크닉을 즐기거나 자유롭게 뛰어놀기 좋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은 한 명씩 어린이 손을 잡고 입장했다. 경기 도중에는 관객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졌다. 9회가 끝난 뒤엔 몇몇 관중들에게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가 주어졌다. 엄마·아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1·2·3루를 돌아 홈을 밟는 꼬맹이들과, 관중석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 얼굴엔 한가득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스호퍼스의 명물인 ‘배트 도그(bat dog)’도 인상적이었다. 젊은 여성 ‘배트 걸(bat girl)’이 방망이를 치우는 우리나라와 달리 늠름한 풍채의 개 두 마리가 번갈아가며 배트를 물어다 날랐다. 막간을 이용해 선보이는 ‘녀석들의 공놀이 쇼’는 또 다른 재미. 경기장 벽면에는 배트 도그로 활약하다 ‘무지개 다리’를 건넌 선배들의 사진이 내걸려, 구단 역사의 한 페이지에 함께 자리했다.
관중들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미 경기장 안팎에서 충분히 즐기고 있기에 승리는 덤일 뿐. 옆자리에 앉은 백발의 할머니는 동양에서 온 젊은이에게 야구 규칙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이날의 재미를 찾았다.
스포츠 경기장은 어떠해야 할까. 한 달 전 스포츠 분야를 맡게 되면서 줄곧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다. 부산 아이파크가 경기하는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KCC 이지스와 BNK 썸이 함께 사용하는 사직실내체육관을 오가며 듬성듬성 비어 있는 관중석만큼이나 경기장 주변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안타까웠다.
관중이 반짝 몰렸다 경기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경기장. 경기가 없는 날이면 죽어버리는 공간을 좀 더 쓸모 있게 활용할 방안은 없을까. 그러려면 경기장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립해야 한다. 단순히 경기를 보는 장소를 넘어, ‘경기도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 야구장과 농구장, 축구장(종합운동장)과 수영장까지 한데 몰린 부산 사직벌은 스포츠를 매개로 한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다. 겨울은 남녀프로농구, 봄~가을은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시즌이니, 1년 내내 스포츠가 끊이질 않는 곳이 사직이다.
경기장 일대를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하면 덤으로 관중석까지 채우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공원으로 나들이 가듯, 집 앞에 마실 가듯 부담없이 오갈 수 있다면 경기장 직관의 문턱도 한층 낮아질 것이다. 지난봄 부산시가 내놓은 사직야구장 재건축 기본계획에는 비시즌 프로그램이나 야구테마공원 등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내용이 일부 담겼다. 이왕 하는 김에 좀 더 통 크게, 전향적으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부산 인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그린스보로에서는 오래 전부터 흔한 그림이다. djrhee@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