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육필로 나눈 문단 교우록 / 박이도
육필(肉筆)은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말한다. 손편지를 쓴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오래전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 기사는 모두 원고지에 썼다. 선배들이 급하게 갈겨쓴 기사가 무슨 뜻인지 해석하느라 골몰하던 그 시절이 기억난다. 컴퓨터로 기사를 쓰면서 편리해져 좋다고만 생각했다. <육필로 나눈 문단 교우록>을 읽고 나니 편리함을 취하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박이도 시인은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신문에 작품이 실리자 소포 하나가 배달되었는데 보낸 이가 김광균이었다고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그이다. 소포 속에는 <시집 와사등>과 함께 만년필로 쓴 편지에 격려의 글이 들어 있었다. 60여 년간 문학 활동을 펼쳐 온 시인은 지금도 그 순간을 못 잊는 모양이다.
초량 이바구길에는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리는 전망대가 있지만 1960년대에 활약한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 지금도 인기리에 방송되는 ‘자갈치 아지매’가 그의 작품이었다. 친구로서 요절 시인의 상가에 갔던 아픈 기억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마광수 편에서는 누가 마광수를 죽였는지 묻는다. 마광수는 그의 고교 후배였다. 마광수는 ‘자살자를 위하여’라는 시에서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라고 표현했다. 언제 적 마광수인데, 여태 하나도 바뀌지 않은 세태가 씁쓸하다.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친필 서체는 물론이고 교유의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박이도 지음/스타북스/344쪽/1만 8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