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외교정책 특징
허만 부산대 명예교수 전 한국유럽학회장
지난해 11월 29일 타계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현대 외교정책의 교과서를 저술했다고 평가받는 최고의 외교관이자 학자이었다. 키신저 박사는 국제정치와 그 환경에 대해 국가적 구조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그러한 시각에서도 국가적 구조가 합리적으로 안정돼 있을 때는 국가적 결속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한 외교정책을 사용할 유혹을 덜 받기 때문에 국제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국내적 구조가 정의의 개념과 국제법 질서 파괴 등과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일 때는 국제관계는 원만하게 유지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래서 국제관계의 찬반에 대한 논쟁이 가열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경우에 국내적 구조는 이해와 협력에 대해 장애물이 되는 한편, 여전히 국제관계에 대한 상수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키신저가 미 국무장관으로 재직한 10여 년 동안 무엇을 핵심적 사항으로 삼았는가. 그는 미국의 국익을 증대하는 가운데 잊지 않았던 점은 국제평화와 안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죽의 장막’에 쌓여 고립해 공산주의를 교조적으로 건설하고 있었던 마우쩌둥이 통치하던 중국의 문을 열게 만들었다. 중국을 미국의 파트너로 변화시켜 구 소련을 억제하고, 그 힘으로 세계평화와 안정을 달성했다. 그것이 바로 세력균형의 원리다. 그는 세력균형이 데탕트를 가능케 했고, 그것이 장기적으로 미중 관계의 화해를 이룩했고, 세계평화와 안정에 공헌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을 볼 때 국내적 구조가 긍정적 목표를 정립시키는데 결정적 요소가 됐다고 지적했다. 케네디 행정부로부터 이어 받은 월남전에 개입한 것도 실질적으로 국내적 구조란 프레임에서 가능했다. 비록 월남전에서 반의 성공과 반의 실패를 경험했지만 동남아 평화와 안정을 달성했다. 궁극적으로 그 지역에 번영의 환경을 조성했다. 그의 구상은 구 소련이 동유럽을 필요로 했던 것이 미국이 서유럽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세력 균형과 지정학적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국내적 구조를 강조하면서도 그는 적절한 힘의 균형을 강조한 외교정책 수립가였다. 국제평화와 안정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전략무기제한협정과 탄도요격미사일제한조약을 체결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한 나라의 과도한 힘의 보유는 국제평화와 안정을 저해한다는 견해를 굳게 견지하고 있었다. 이 같은 시각에서 그는 케네디 행정부 시절의 대량보복전략이 국제평화와 안정을 달성하는데 의문을 제기한 적도 있었다. 결국 그가 열심히 추구했던 국제평화와 안정은 미국의 국익을 도모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평화와 국제평화를 위해 때로는 이상주의적 접근을 때로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과감하게 넘나들었다.
키신저의 이 같은 외교정책 모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한국은 서쪽으로는 중국, 동쪽으로 일본과 마주하는 한편, 태평양 건너 미국과는 전통적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정학적 환경에서 우리는 키신저의 외교정책을 고찰한 바와 같이 외교의 악을 최소화하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외교정책을 밀고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제권에 영향을 심하게 미치고 군사력 경쟁에서 미국을 멀지 않아 압박할 중국과 유연성 있는 외교를 펴야할 시기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를 유인하는 긴 과정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법에 기반하는 국제질서와 도덕적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일본에 대해 전략적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선도해야 한다. 최근 한미일 삼각협력 관계를 견고하게 한 것은 이러한 외교에 부합된다. 끝으로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과의 외교는 아태전략 수행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토 기구와도 협력하는 광역적 안보외교를 통해 한반도에서 초고도 전쟁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