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영남알프스 완등 메달
꽤 오래전 일이다. 울산 울주 신불산 정상에 올랐는데 표지석에 ‘해발 고도 1209m’라 새겨져 있었다. 영남알프스 9개 연봉 중 서열 2위다. 꽤나 뿌듯했다. “다음 목표는 1위 가지산(1241m)이다!” 한참 지나 다시 신불산에 갔더니, 웬걸 예전 푯돌은 뽑혀 나가고 없고 웅장한 새 정상석이 서 있는 게 아닌가. ‘해발 고도 1159m.’ 그 사이 표고가 낮아졌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재측정으로 무려 50m나 깎이는 바람에 4위 봉으로 추락했던 것. 2위 봉으로 알고 종주를 마쳤던 산악인들에 꽤나 큰 ‘충격(?)’을 줬던 사건이다.
영남알프스 종주는 지역 산악인에게 일종의 통과의례다. 1000m 이상의 9개 연봉을 섭렵하고 나서야 “산 좀 탄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다. 억새 평원이나 임도로 이뤄진 흙산 구간은 걷기 수월하지만 공룡 능선 같은 아슬아슬한 골산 구간을 뚫어내야 할 때도 있다.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 간월재는 영남에서 손꼽히는 ‘백패킹의 성지’다. 연전에 간월재 목제 덱에서 야영할 때 본 달빛 아래 억새의 군무를 잊을 수가 없다.
올해 정초부터 영남알프스에 등산객이 몰려 북새통이다. 울주군 주최의 ‘영남알프스 8개 봉우리 완등’ 이벤트가 해를 거듭해 인기라서다. 8개 연봉의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전용 앱에 업로드를 하면 기념품으로 순은 메달이 지급된다. 3만 개의 메달이 예년에 5월 즈음 바닥났기 때문에 이른 경쟁이 불붙은 것일까. 지난 9일 기준 벌써 1000명이나 종주를 마쳤다. 1일 3봉까지만 인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연초에 최소 사흘, 길면 매일 산에 올랐다는 말이다. 올해 메달 소진 시기가 얼마나 당겨질지 등산 동호인 사이에 초미의 관심사다.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횟수는 10만을 가뿐하게 넘겼다. 동네 이벤트가 아닌 전국적인 대박이다.
울주군의 사례로 부산을 되돌아 본다. 성공 요인은 간단하다. 미션 인증과 보상. 부산의 갈맷길, 해파랑길 그리고 많은 둘레길에도 인증이 있지만 심리적 보상에 그치니 임팩트가 없다. 물론 예산 부담이 있지만 지역의 공공 자원과 연계하는 등 대안을 찾아볼 수 있다. 제주 올레길도 관심이 식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공동 완주’ 인증을 도입해서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맨발 걷기 순례’ 이벤트라면 어떨까? 부산 동구청은 2월 구봉산에 맨발 걷기 황톳길을 조성한다. 이미 부산에 맨발 걷기 명소가 많아 연계하기 수월하다. 관광 자원은 우리 주변에 이미 있다.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보상’을 붙이면 사람이 모인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